소수의 거액 아닌 다수의 소액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예술 작품

수익 돌아오는 투자형, 예술가 키워내고 나눔 실천하는 후원형

텀블벅, 2016년 1,500개 프로젝트…10만명 후원자·66억 펀딩

▲ 영화 크라우드펀딩의 기록을 갱신한 작품 ' 눈길'은 기존 목표액을 상향조정한 바 있다. 3월1일 개봉.
3월1일 개봉을 앞둔 '눈길'은 영화 크라우딩펀드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목표를 달성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크라우드펀딩 전문 와디즈(www.wadiz.kr)를 통해 오픈 30분만에 목표금액 4천만원을 넘겼고, 사흘뒤 목표를 3억으로 상향조정해 달성했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2015년작 '귀향'처럼 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상에 선보이는 영화이자,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수익도 돌아오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다.

대중(Crowd)과 자금(Funding)의 합성어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의미의 크라우드펀딩.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등이 자신의 창작 프로젝트나 사회공익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로부터 투자를 받는 방식을 뜻한다. 암암리에 이뤄진 투자 및 압력이 밝은 세상의 많은 주인들에게 가는 방식이다.

'소셜펀딩'이라고도 불리는 크라우드펀딩은 2009년 미국의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로 시작해, 우리나라에는 2011년에 개념이 자리잡았다.

크라우드펀딩은 음악이나 만화, 게임, 영화, 상품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을 제안하면, 인터넷을 통해 몇천원부터 거액까지 자유롭게 투자하는 방식이다. 창작자는 누구나 될 수 있으며, 투자는 미리 정한 목표금액을 달성해야 비로소 이뤄지고, 금액에 따른 상품이나 영화 티켓, 기념품 등의 보상이 돌아온다. 크라우드펀딩은 아이디어는 좋지만 자금이 모자라 묻힐 뻔한 제품들을 탄생시켰고, 거액투자자들의 압력 속에 포기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에 신념을 담아냈다. 크게 투자형과 후원형으로 나누는데, 크라우드펀딩 초반에는 수익을 돌려받는 투자형이 강세였던 것에 반해, 최근 후원형이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특히 영화는 크라우드펀딩이 국내에 도입된 계기이자 가장 활발한 분야로, 투자형과 후원형이 섞여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약 40%의 수익률을 올려 영화크라우드펀딩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후원형의 경우 '모자란 제작비를 보태 꼭 완성시키고 싶다', '주요 극장에 걸어 더 많은 사람이 봐야한다'와 같은 의지가 크다. 크라우드펀딩이 없었다면, '눈길'은 물론 웹툰을 영화화한 '26년', 원전재난영화 '판도라', 2002년 6월의 실화를 담은 '연평해전'과 같이 진실을 밝히는 영화들이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공감펀딩 채널은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우리 사회 기부나눔문화의 트렌드가 됐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다양한 분야에 숨을 불어넣는다. 창작자에게는 실제 자금도 만들고, 별다른 홍보수단 없이도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창작자는 펀딩을 모집하며, 자신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1만원 후원자들에게는 유기견 디자인 엽서, 3만원 후원자들에게는 독립영화 시사회 초대권 등과 같은 보상도 정확히 제시한다.

투자자, 후원자 입장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은 대체 불가능한 소비 방식이다. 대기업이 내놓은 똑같은 공산품을 구입하는 삶에서, 남과는 다른 독창적인 '작품'에 투자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창작자를 키워내며 그 결과물을 받는 보람도 쏠쏠하며, 후원자에게만 제공되는 한정판 보상도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트렌드와 부합한다.

따뜻한 꿈을 이루어주는 가치있는 후원방식 크라우드펀딩. 국내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업체 '텀블벅'(www.tumblbug.com)은 문화예술계 제작자들의 프로젝트를 투자자와 연결해준다. 2011년 시작 이래, 2016년 한 해에만 1,507개의 프로젝트가 106,726명의 후원자를 만났다. 1년동안 모인 후원금은 총 66억1,196만여 원으로,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2015년까지 모인 총 누적 후원금을 가뿐히 넘겼다.

23살에 텀블벅을 창립, <포스브>에서 아시아의 젊은 리더로 선정된 염재승 대표는 '누군가의 첫 도전을 돕는 사람'이라고 설명된다.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제작비 모으기가 어려웠던 그는 "영화의 내용과 취지를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몇만원씩이라도 투자를 받으면 어떨까"라고 고민하다 크라우드펀딩과 만났다.

"돈이 될 만한 것만 밀어주는 자본 시장의 논리에서 탈피해, 재미있는 것들을 해볼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는 텀블벅은 예술분야의 창작일 것,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을 것 등의 간단한 조건을 충족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도 공유된다.
▲ 텀블벅에서 펀딩에 성공한 창작물들. 작은소녀상, '룩앳램프', 일러스트북 <맥주도감> 사진 텀블벅.
지난해 텀블벅에서 역대 최고 후원금액이 나온 프로젝트는 <작은 소녀상>이다. 특히 정치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프로젝트들이 주목받았던 2016년, <작은 소녀상>은 한일 '위안부' 합의문제를 비판하며 '평화의 소녀상'을 작게 재현해 더 많은 이들과 그 뜻을 나눴다. 후원금액 2억6,652만원과 최다 후원자 수 9,003명을 동시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2주기, 촛불집회 등을 주제로 한 창작물도 펀딩에 성공했고, 출판 비용을 펀딩받은 페미니즘 입문서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랐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악기을 잃은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에게 새 악기를 헌정하고 공연을 열어 중장년에 음악의 향수 를 불러일으켰다.

텀블벅의 성공은 포털사이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의 경우 2015년 '공감펀딩' 채널을 열어 기부문화를 확장시켰고, 다음은 '같이가치'를 런칭했다. 와디즈가 영화 투자, 텀블벅이 문화예술분야라면, 포털사이트의 펀딩은 공익적 의미가 크다. NGO,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우리 사회를 맑히고 밝히는 프로젝트를 나눈다.

발달장애인, 대학생들이 함께 텃밭을 가꿔 '가꿈비누'로 만드는 NGO 동구밭은 목표금액을 756% 초과달성했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가 새겨진 패션소품을 만드는 에코인블랭크는 2백만원 목표에 8백만원이 넘게 순항 중이다.

이 밖에도 구례 산수유나무 지키기, 지적장애인과 노인이 함께 만드는 구급키트, 동해 해양심층수로 만든 독도 후원 토너, 익산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에서 무료변론을 해온 박준영 변호사 등 각양각색의 프로젝트와 후원자들이 만난다.

교단에서도 100주년기념성업의 일환으로 크라우드펀딩이 시도됐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 걸음으로 후원한 '빅워크'는 3천만원이던 첫 목표액이 두번이나 상향조정했다. 함께 모아 마침내 이뤄낸 성공에 힘입어, 교단은 다음 크라우드펀딩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5월 일본 한 사찰에서 테크노음악 천도재가 열린다. 젊은 불자를 포교하고 천도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사찰은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4천만원을 모았다. 자금도 자금이지만, '테크노천도재'라는 생소한 개념을 홍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전략이다. 이제는 좋은 기획만 있으면 세상의 관심과 자본이 모이는 시대다. 어떤 아이디어도 크라우드펀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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