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기업, 틈새 시장 공략하다

'조선업이 초호황을 누리던 시절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던 조선소가 경기 불황과 업계의 구조조정 여파 등으로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해 관광 거제도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흉물이 되고 있다.'

연일 심심찮게 올라오는 조선업 불황 뉴스를 확인하면서 거제도로 향했다. 중소 조선소를 경영하는 아시아조선(주) 이영춘 대표(63·법명 인관. 북통영교당)를 만나기 위해서다. 바다를 끼고 돌아들어가는 진입로 군데군데 텅 빈 채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조선소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아시아조선에 도착했을 때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졌다. 넓은 도크(Dock·선박건조대)에 쌓여있는 선박 건조 자재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근로자들은 이곳이 활발하게 살아움직이고 있는 삶의 현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경남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에 위치하고 있는 아시아조선은 2009년에 설립된 중소 조선소로, 소형선박 건조 및 수리조선업을 경영목표로 두고 있는 중견 기업이다. 그는 지난 1월, '2016 조선해양산업 발전 유공자 정부 포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산업통상부에 의하면 '일본에 의존하던 중소형 선박의 건조기술 자체개발, 연안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사를 위한 시험조사선 건조' 공로라고 한다.

"특히 2년 전부터 실적이 증가하고 특수선을 건조하면서 대외신인도가 높아졌어요.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모든 대기업들이 적자였기 때문에 처음으로 중소기업으로 차례가 넘어온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유망 기업인으로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한 점을 공로로 인정받아 신용보증기금의 '라이징스타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유례없는 조선 경기 불황에 따라 전세계 조선소 중 지난해 선박 1척이라도 수주한 조선소가 전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신문기사와는 반대로 마산에 제2공장까지 확장한 아시아조선의 비결은 무엇일까?

"사업 방향을 잘 잡았다고 봐야죠. 신조선(새로 만드는 배)과 수리선(수리하는 배) 사업을 같이하는 것으로 아이템을 잡았어요. 신조선 물량이 없을 때는 수리선 수주를 받으면 되고 신조선 물량이 증가하면 수리선은 수주시기를 조정하면 되니 1년 내내 수요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국내에서 운항되는 대부분의 연안여객선이 아시아조선에서 건조되거나 수리된 것들이다. 모든 선박은 1년에 1회 의무적으로 수리를 해야 하며, 세월호 사건 이후 선령 제한이 30년에서 25년으로 단축돼 안정적 물량확보가 가능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제, 통영에서 수리선 조선소는 아시아조선이 유일하고, 전국적으로 봐도 수리 조선소로 첨단 설비가 완비된 곳은 손꼽을 정도다.

"선박을 바다에서 도크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육지 위에 100m, 바다 밑으로 150m까지 레일이 설치돼 있습니다. 3년 전, 전국적으로 조선업이 불황일 때가 있었어요. 과감하게 조선소 문을 닫고 6개월 동안 10억을 들여 수리선 시설과 함께 공장 리모델링에 투자했습니다. 새롭게 완비되니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 거제시 성포리에 위치한 아시아조선(주)은 연안여객선과 같은 소형 선박을 건조한다.
한창 조선경기 호황일 때, 소형선 건조 및 수리조선소가 대부분 대형 선박 블록 제작으로 업종전환을 했지만 그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시류와는 반대로 경영목표를 정했던 것이 주효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이어진 수주 부진과 과잉 설비투자에 발목이 잡혀 대형 선박 블록 제작 조선소들이 침몰한 것과 비교해본다면 그의 안목은 정확했던 것이다.

"35년 전부터 조선 업종에 종사해 오면서 설계, 생산, 자재구매, 재정 회계, 영업계약 등 모든 분야 실무경험을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보니 소형선 건조 사업에 자신이 붙었고, 무엇보다 경기를 타지 않는 수리 조선업이 전망 있다고 판단했어요."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지난해 대통령상을 받을 만큼 최고의 실적과 함께 최악의 재난도 함께 왔다. 바지선 7척 납품 과정에 두 가지 위기를 만났다. 평택항까지 예인선이 끌고가던 바지선 1척이 침몰돼 건져 올리는데 45일이 걸렸고 2억의 손실을 입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5척을 외주로 제작했는데 납품 업체가 계약을 어기고 터무니없는 액수의 추가금을 요구하면서 선박 인도를 해주지 않는 겁니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 달 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어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최대 위기를 겪었다는 그는 오히려 위기가 감사하다고 했다. 그동안 승승장구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를 정신 번쩍 들게 했다는 것이다. 5년째 북통영교당 교도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바쁘다 보니 교도회장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어 늘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교당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발로 뛰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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