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경 교도/서울교당
도심다경은 평화까지 한 마음 돼 진리와 함께 가는 길

법명으로 마음 문 열리고 자기형성의 좌표로 전환



지난 1월 초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에 선명하게 찍힌 마침표에 눈길이 멈췄다. 포스터의 영어 제목도 'your name.' 의도한 것이다. '제목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는 통념의 경계를 넘어서며 술어도 없는 제목에 마침표를 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의중에 호기심이 일었다.

제목의 의외성으로 인해 잠시 멈춰 그 문장이 갖는 의미를 추측하며 '이름'에 얽힌 내 유년의 기억과 법명으로 법적 개명절차를 완료한 최근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했다. 무지 스프링 종합장을 가로로 접어 칸을 만들어 쓰던 저학년 어느 날의 일기는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제목은 '나는 왜 나일까?'였다.

나, 가족, 나로 불리는 내 이름에 대한 불만과 물음표로 가득한 일기였다. 되돌아보면 마침표 보다 많은 물음표로 가득했던 그 일기로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내 이름에 도무지 애착이 생기지 않았다. 십대 시절부터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보다는 스스로 유별스레 고민해 지은 또 다른 수많은 이름(별명, 온라인 닉네임)에 더욱 마음을 주며 살아왔다.

원기100년 4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으며 입교를 했다. 올해 1월 법명인 '도심다경(道心多慶)' 중 '도경' 두 글자로 법원으로부터 개명 허가를 받았다. 도심다경은 도심(원심, 일심, 천심)으로 만나서 내 마음의 평화, 세상의 평화까지 한마음 되어 진리와 함께 가는 길에 사람과 일이 서로 경사롭다는 의미다. 2년 여전 법명을 처음 듣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일체감으로 강력하고 신성한 끌림을 느꼈다. 그때 '기념대회를 마친 1년 후에도 이 마음이 변치않으면 법명으로 개명을 하겠다'라고 다짐을 하고 가족과 절친한 지인들에게 선언을 했었다. 즉, 법명으로 원불교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두 번 바뀌고 다짐대로 개명을 진행했다. 허가 후 뒤따르는 변경 절차들은 흔히들 우려하는 번거로움이 아닌 사회관계망에 촘촘히 연결된 실존의 자취를 찾아 변경해나가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교당의 명절합동향례시 모신 수많은 낯선 타자들의 위패들을 보면 고인은 '이름'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이름은 개인을 인식하는 얼굴과 삶의 궤적을 일치시키는 통로이며 사회 구성원으로 실존하게 하는 플랫폼이자 한 개인이 극대화되는 최전선의 표면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민감한 개명을 감행하다보니 요즘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리면 질문을 받게 되고 사실을 커밍아웃한다. 삶에 종교를 받아들였음을 그것이 원불교이며 실명이 된 법명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다면 상대가 생소하게 여기는 원불교란 어떤 종교인지로 이어지곤 한다. 원불교에 대한 내 마음의 불꽃이 핀 발화점인 법명이 자연스럽게 주변 교화의 마중물이 되어 익어가고 확장될 것으로 생각하는 지점이다.

'김도경의 김도경 되기'는 철저하게 내적 동기에 기인한 욕망과 문답을 통한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통해 실현됐다. 그러나, 아직 나는 모른다.

진리와의 마주함이란 어떤 것인지, 나를 휘감던 그 먹먹함이 그것 인지, 법신불사은을 부를 때의 그 알 수 없는 가느다란 떨림이 몸과 마음을 온전히 관통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천천히 계속 다가갈 뿐이다.

법명으로 마음 문이 열리고, 연원 교무님의 권유로 뒤늦게나마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49일 천도재를 원불교 의식으로 치렀다. 담박하고 오롯한 원불교 천도재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 마음을 생사일여의 생사관으로 치유하며 담금질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이후 단계적으로 집안의 제사를 원불교 명절합동향례로 서서히 돌리며 가족교화라는 작은 개벽의 물길이 트이고 있다.

이름을 자기 형성의 좌표로 전환해 이름값하며 살기를 바라는 인생 하프타임의 길 초입에 서있다. 나의 이름은, 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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