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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을 찾아서/ 서울교구 한강교당
교당을 찾아서/ 서울교구 한강교당
  • 민소연 기자
  • 승인 2017.03.03
  • 호수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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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당 통합으로 100년기념관 교화 이끌 한강교당
▲ 서울교구 한강교당은 남서울·반포교당이 통합돼 이뤄진 곳으로 원불교100년기념관 설립 후, 교구청교당으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항단회를 마친 한강교당 교도들.
통합으로 새로운 교화전기 마련한 서울교구 한강교당
남서울·반포교당 통합해 올해 1월1일 한강교당 봉고식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새로운 문화 만들어 가는 중



친구집 놀러온 듯 다정하게 합쳐진 두 교당이 있다.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한 것이 아닌, 대등하게 만나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난 서울교구 한강교당. 3킬로 거리였던 남서울교당과 반포교당이 합쳐 벌써부터 교화 시너지 나니, 매주 명절이자 축제다.

반포주공아파트 상가 3층에 위치한 옛 반포교당은 낮은 천장과 대각전 안쪽의 생활관 등 30년 넘은 옛 건물의 모습 그대로다. 긴 상가가 학원 일색이다보니 주말엔 더없이 조용한 동네지만, 이번 겨울부터는 얘기가 다르다. 10시30분에 맞춰 줄줄이 멈춰서는 승용차며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바로 한강교당 교도들이다.

평균출석 25명이었던 반포교당에 남서울교당 35명이 함께 한 것은 지난 12월. 이전부터 안면도 있고 행사도 함께 했지만, 본격적인 '합방'은 18일이었다. 두 배 이상이 된 교도로 대각전이 가득찼고, 의자만으로는 모자라 바닥까지 방석을 깔았다. 점심 공양을 준비해야 하는데 양 가늠이 어려워 부엌이 소란했다. 거실이나 주방, 청소년방 뿐 아니라 두 교무 방에까지 상을 깔고 점심을 먹었다.

하필 행사가 이어지는 시기였다. 연말결산이며 교당교의회, 회장단 이·취임, 지구훈련 등 매주 행사를 치렀다. 1월1일 봉고식에는 85명이 함께 해 한강교당의 시작을 축하했고, 기특하게도 매주 출석이 조금씩이라도 계속 늘었다. 나란히 앉은 교도들의 사이는 더 가까워졌고, 이제는 어깨가 닿을락말락이다. 두달만에 70명 정도, 초대법회를 하고 싶어도 앉을 데가 마땅찮아 망설여질 정도다.

남서울교당과 반포교당의 통합은, 이번 서울교구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교화구조개선의 가장 큰 결실이다. 100년이라는 역사 한 페이지를 넘기며, 교단은 서울교구 교화구조개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세상의 바뀐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2세기 교화의 방향키가 될 서울의 변화는 이 한강교당에서 크게 드러나고 있다.
남서울교당과 반포교당이 통합에 합의한 것은 원기100년이다. 옛 서울회관 자리에 들어설 원불교100년기념관은 서울교구와 교정원 일부, 기관 및 단체들이 한 데 모여 수도 서울 교화와 영성의 메카가 될 것으로, 이 곳에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점교당이 있어야 했다.

남서울교당과 반포교당 교도들은 고민이 깊었다. 두 교당 모두 40년 가까운 세월로, 각기 알뜰한 신앙들을 꽃피워와 존경받는 공부인들을 많이 낳았다. 그랬기에 당연히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내 두 교당은 큰 그림을 봤다. 원불교100년기념관의 교구청교당으로, 수도교화의 참주인이 되어 원기100년대를 이끌어가겠다는 주인정신, 두 교당은 그렇게 하나의 이름에 마음을 모았다.

합의하고 나서도 반포교당 이여솔 교무를 비롯, 황도국 서울교구장, 양명일 국장 등 교무들과 양 교당 교도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주기적으로 연합법회를 열고 훈련도 합동으로 진행했다. 서서히 얼굴을 익히는 한편, 교화 전력질주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의미에 대해 많은 감상을 나눴다. 남서울, 반포의 통합이라는 역사적인 대업은 그런 세심한 배경을 바탕해 올려졌다.

그러나 막상 합치고보니 예상 밖의 상황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두 교당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흑석동 언덕 가운데 가정집 같았던 남서울교당은 법회가 끝나고도 계속 자리에 앉아 그간의 밀린 수다도 떨고, 쑥떡도 만들고, 가까운 현충원으로 놀러도 가는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그에 반해 연령대가 더 높고 먼 거리에서 오는 교도들이 많은 반포교당은 법회나 행사도 공부 위주로, 조용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왔다. 무엇보다도 교무님 쉬시도록 점심공양 후 서둘러 일어나는 반포와 종종 저녁까지 먹고 가는 남서울 교도들의 생각이 달라서, 서로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왜 안가고 있나"라고들 생각했었단다.

반포교당에서 한강교당 주임교무가 된 이여솔 교무는 이러한 차이를 존중하고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는 이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사람이 늘어서가 아니라, 원래 분위기가 다르다보니 서로 조심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이 교무. 그는 "얼마 안됐지만 앞날이 아주 밝다. 이렇게 통합이 잘 된 것은 무엇보다도 아예 새로운 이름의 교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흡수가 아닌 대등한 통합으로 "예전의 남서울, 반포가 아닌, 새로운 교당이 된다"는 공감대가 있어 양보와 변화가 쉬웠다는 것이다.

한강교당 초대 교도회장으로 얼마전 취임한 안도창 회장은 또 하나의 비결을 덧붙였다. "앞으로 통합이 필요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곳이라면, 합동법회 및 훈련 등을 통해 교도들끼리의 사전작업을 충분히 해야한다"며 "안면도 익히고 서로 다른 분위기도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 교도들 스스로의 공심도 더 커진다"고 전했다.

교화구조개선이 필요한 전국 모든 교구와 교당들의 눈이 모인 이곳. "두달이 되니 이제 좀 밥 양도 잘 맞고 공양때도 잘 어우러진다"는 한강교당은 벌써 교화단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2월26일 한강교당 역사상 두 번째로 열린 단장·중앙 항단회의는 단회를 어떻게 이끌고, 서로 소통하는지가 세세하게 지도됐다. 남서울과 반포 시절에는 없었지만, 한강교당으로 거듭나며 가장 중점을 두는 시간이다.

항단회의는 먼저 교도들의 일상 이야기를 끌어냈다. 퇴직 후 아침 운동을 하며 인연을 쌓는 교도, 예배가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교도 등 서로 인간적이며 일상적으로 알아가는 기회를 주고, 고루 섞인 단에서도 어떤 주제로 회화해야하는지를 제시했다.

출석부에 새롭게 마련된 '의견제안' 이야기도 오갔다. 이여솔 교무는 "대종사님 당대부터 다양한 의견 제안이 교단의 힘이 되어 이끌어왔다. 우리 한강교당은 올해와 내년 준비를 해서 원불교100년기념관에 들어가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 때 지체없이 교화를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늘어난 교도와 단, 그 안에서의 장단과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장치다.

교무의 뜻에 부응하듯, 교도들은 그 자리에서 의견을 전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우리가 들어갈 원불교100년기념관의 건축 현황이다"며 공사 일정 등에 관한 브리핑 요청이 가장 큰 공감을 끌어냈고 "청소년교화를 맡았는데, 두 교당 현황이 필요하다"며 종합적인 점검도 제안됐다. 기존의 '우리 교당 관습'이 아닌, 집단 지성의 좋은 선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2년, 한강교당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무장할 계획이다. 한강교당은 적정한 사이즈로 규모의 교화를 이뤄낼 교당이자, 어느 한 곳에 속하기 보다는 법회나 마음공부, 선 등을 찾아 유목민처럼 움직이는 교도들을 담아낼 미래형 교당으로 기대되고 있다. 잠자는 교도들이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열린 교당 등 시대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강교당인 것이다.

양 교당 70년 역사를 딛고 수도서울, 나아가 교단 전체의 교화 메카가 될 한강교당. 그 시작은 수도서울의 강남시대를 열었던 반포로, 두 교당의 사뭇 다른 문화와 에너지가 서로 양보하고 조율되고 있다. 하나된 한강교당이야말로, 원기2세기 교화를 이끌 주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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