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록

▲ 원기28년 1월3일 개성출장소 교도 및 여학원들. 원본 크기 14.4cm x10cm . 왼쪽 상단에 적힌 '원기18년'은 '소화18년'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기28년(1943) 1월3일 불법연구회 개성출장소에서 이공주·이경순 교무가 개성 교도 및 여학원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촬영 당시 개성출장소는 제2대 이경순 교무가 교화하던 시절로, 이공주 교무가 함께 찍힌 사연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학생은 야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추정된다.

개성교화는 불법연구회 회원인 이천륜 씨가 교무파견을 요청해, 원기23년 김영신 교무가 초대 교무로 부임함으로써 시작됐다. 김영신 교무는 이천륜 씨 가정교사로 활동하며 그 가족을 입교시키고, 밤에는 야학당을 빌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문, 주산, 작문, 일어 등 중학과정을 가르쳤다.

원기26년 2대 이경순 교무가 부임해 교화의 활기를 띠었고, 3대 이순석 교무가 원기36까지 교화를 펼쳐 당시 교도수가 635명으로 기록돼 전해진다. 개성교당 봉불식은 원기32년 7월3일 정산종사를 초빙해 개최했다. 개성지부 교화는 한국전쟁 후 멈춰진 상태며, 개성교당 건물은 폭격으로 파괴돼 현재는 전화국이 위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난한 초기교단에서도 개성교화를 펼쳤던 선진들을 통해 북방교화의 중요성을 새겨본다.

원불교기록관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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