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일미(茶道一味), 차 한 잔에 시름 잊다

따사로운 봄볕이 살포시 내려앉은 한낮의 다실. 곱게 차려진 다식과 꽃꽂이가 다상에 놓이고, 다관에 담긴 금준미가 잘 우러나도록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부산했던 하루의 일상이 위로된다.

맑은 차 한 잔에 인사를 담아 건네던 그는 "다도(茶道)가 곧 선(禪)이며 마음공부다"고 말한다. 고려시대 대문장가였던 이규보도 50여 편의 다시를 쓰며 '차 한 사발은 참선의 시작이며, 차의 맛은 도의 맛이다'라고 말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4년 동안 온통 차와 함께 살아온 강금이(법명 효은·58·농성교당) 전통예절지도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몰입해 왔는지 이생에 더는 욕심이 없다는 그.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해 늘 잔병치례하며 살았던 그가 차를 만나 생기를 얻고 행복을 찾았다.

"원불교 교리가 교과서라면 다도는 실천이에요. 몸과 마음을 아울러 닦는 데는 차만 한 게 없죠."

그 확고한 믿음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전통예절지도사 명함 외에도 인성지도사, 심리상담사, 홍차티마스터, 중국다예전임교수, 일본차지도사, 차치료상담사, 한국차감정사, 전통폐백지도사 등 그 직함이 열 손가락을 넘어선다.

"저는 날짜 개념이 없어요. 오직 요일만 있을 뿐이죠." 일주일 동안 쉼 없이 스케줄을 뛰어야 하는 그는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유치원에 가면 엄마가 되고, 학교에 가면 친구가 되고, 복지관에 가면 어린애가 되어주는 그는, 대상에 따라 눈높이 수업을 하니 어딜 가나 인기다. 그 비결은 차와 예절을 통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마음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다도 수업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함께 노래도 부르고 차도 마시면서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요. 그렇게 마음공부하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마음공부로 이끌지는 못한다. 그래서 도입한 방법이 명상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켜요. 때론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아이들이 잘하죠. 그래서 저는 유아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마음공부도 습관처럼 자꾸 하다 보면 단련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마음공부를 어렵게 생각하고 재미없는 공부라고 터부시한다.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차를 만나면서 그는 달라졌다. "몸에 좋은 음식은 많지만 정신까지 치료해 주는 음식은 차라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로 병을 많이 얻잖아요. 마음의 병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방치하면 더 큰 화를 불러와요. 차는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해 주죠. 실제로 차에는 항산화 성분이 있어 암,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도 좋고 머리를 맑히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병약했던 그가 실제 경험을 하고 보니 가끔은 애 닳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강의나 다례 활동보다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지도자양성이다. 그의 집에는 방 한 칸을 내어 다실을 차릴 정도다. 다실에는 6대 다류인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다기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 소규모 강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차를 하다 보니 다식도 만들고, 자수도 하고, 꽃꽂이도 하고, 다시(茶詩)도 짓게 되더라고요. 생활에 많은 변화를 줬어요. 정산종사께서 풍류로써 세상을 건지라고 하셨는데 차가 바로 풍류교화였어요. 차 한 잔에 마음을 나누다 보면 그곳이 바로 극락이더라고요. 차를 공부하면 어떤 역경이 와도 두렵지 않아요. 한 세상 소풍 다녀간다고 생각되어져요."

이미 차를 통해 선의 경지를 맛본 그는 차를 하는 동안은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차와 교당 밖에 모르고 산다고. "저의 바람은 소박해요. 다도를 통해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차는 나눔이고 소통이니까요. 그렇게 욕심 없이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바쁜 일상의 연속이지만 가끔은 홀로 다실에 앉아 시를 쓴다는 그. 햇살 좋은 봄날의 오후, 그의 공간에 기대어 시심에 빠져본다.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서는 겨울바람/ 휙휙대는 요란한 소리에 가슴 시리니/ 따스한 차 한 잔이 그립다./ 애써 마음을 비우고 자리하니/ 물 끓는 소리 솔바람이 일고/ 다관안의 차는 물을 기다린다./ 하얀 찻잔에 녹차를 채우니/ 청량한 물소리 향기로움에 젖는다./ 햇빛 드리워 차석 펼쳐 놓으니/ 향기로운 차 한 잔 마주할 차 동무 그리워라.'(그리움, 강금이)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