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활동했던 교정원 국제부 치바법인대책위원회(위원장 백현린)는 일본 나기사석재회사와 치바법인 문제를 대화와 불공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기사석재회사 측이 치바법인 문제에 강경하게 나옴에 따라 교단도 지난해 12월24일 5차 치바법인대책위 회의에서 '법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결정'했고, 차광신 일본교구장을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일본 변호사와 치바법인 문제를 해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따라 본사는 ▷1주 치바법인 현장을 가다 ▷2주 치바법인 조사위원회 활동과 과제 ▷3주 치바법인 기고 ▷4주 치바법인 향후 방향과 과제로 기획해 오까야마(岡山)·치바(千葉)법인이 어떻게 개인회사인 나기사석재로 넘어갔는지 분석한다.

▲ 2005년 9월29일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주)나기사석재의 기노시다 가스시로 사장에게 원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일본 사설묘지사업 근황과 종교법인

일본 유력 일간지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쿄, 카나가와, 치바, 사이타마의 1도 3현의 사설묘지 수는 9,926개소(2009년 기준)로 5년 전보다 408개소 증가했다. 일본의 경제전문지 〈다이아몬드〉에서도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이미 3조 엔(한국 30조원)대의 장의시장 규모가 형성돼 '불황을 모르는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의 경제침체에도 사설묘지 사업이 잘 되는 이유는 도심의 공영묘지 대부분이 '만실'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1948년부터 '묘지 및 매장취체규칙'을 제정해 매장을 금지하고 화장을 장려해 온 결과 현재는 99%이상의 장례가 화장으로 이뤄진다. 반드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공립묘지나 종교단체, 사원 등에서 허가를 받고 운영하고 있는 사설묘지를 이용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묘지 신설을 억제하고 있어서 개인묘지든 공공묘지든 묘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어 사설묘지 사업이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사설묘지의 증가는 석재산업의 이익과도 연결된다. 설치된 분묘 1기당 약 4~6m 정도로 묘명을 비롯해 기단부 등 전체구조가 석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올해 2월10일 익산 황등농공단지에 위치한 (주)초석석재산업이 일본 쓰게석재(주)에 연간 500만 달러(한화 47억원)의 황등석을 일본에 수출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된 사례만 봐도 일본내 석재에 대한 수요를 가늠케 한다.

사설묘지 사업자들에게는 '종교법인'이 필수적이다. 종교법인이 받는 영대(永代)사용료, 묘지관리비용은 기본적으로 비과세 처리되고, 묘지 등에 대한 재산세도 원칙적으로 비과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지침은 사설묘지사업은 종교법인 등 공익법인에 한하여 할 수 있으며, 명의를 대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묘지가 이익추구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공공성과 공익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일본 동경교당.
조사위 활동, 교단의 부실적 대응 지적

차광신 일본교구장에 의해 제기된 치바법인 문제로 원기100년(2015) '치바법인 관련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조사에 착수하면서 해외법인 관리에 대해 교단이 부실적으로 대응한 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무엇보다 교단이 해외교화에 대한 전략적이고 기획적인 접근 결여와 해외교화를 담당할 전문가 양성에 대한 무관심이 결과적으로 이러한 폐해를 낳은 것으로 판단했다. 오오끼에 의해 오까야마법인이 설립됐고, 치바법인은 오도근(근진)교도에 의해 설립되는 등 현지인 또는 현지상황에 밝으면서도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 사업을 진행한 교화방식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오오끼는 오까야마법인 명의로 일본 내에서 개인사업을 추진하다 상당한 채무를 발생시켰고, 그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교단 몰래 '종교법인 원불교 오까야마' 대표역원을 (주)나기사석재 기노시다 사장에게 팔아 넘겼다. 또 오도근은 교단에서 일본교화 순교로 발령했으나, 단독으로 '치바법인'을 설립했다. 결국 경제적 문제로 대표역원(이사장) 사표를 제출하자, 교단이 치바법인을 6억원이나 들여 이철행 교무를 이사장으로 정상화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와 함께 교정원 국제부와 일본교구장의 해외 법인에 대한 관리 소홀이 컸던 점도 밝혀졌다. 일본 법인에 관해 교정원 국제부가 관리의 주체가 되어야 함에도 오까야마법인의 대표역원이 변경된 사실을 기노시다 사장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비로소 알았던 점이나, 교단에서 인수한 치바법인의 이사장 대무자로 파견된 일본교구 김상원 사무장이 치바교당 담보대출 등 경제사고를 일으키고 잠적해 법적 소송에 휘말리도록까지 방치한 점은 관리소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조사위원회에 의하면 기노시다는 오까야마법인과 치바법인의 부채를 떠안겠다고 하면서 치바법인을 영묘사업에 사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교단에서는 이를 수용한다. 이후 기노시다는 약속한대로 치바법인으로 발생한 법률적 소송을 떠안았고, 동경교당을 매입해 기부하는 등 한국의 중앙총부를 오가며 신뢰관계를 쌓아간다. 기노시다는 오까야마·치바법인 경제적 문제 해결, 동경교당 희사 등의 공로로 대호법 법훈과 원광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게 된다.

조사위원회는 관련자 면담조사에서 이러한 정황을 당시 교단 지도부가 기노시다와 교단 관계를 '상호부조'의 협력적 관계로, 일본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교무들은 치바법인을 매개로 한 교단과 (주)나기사석재 사이의 조건부 거래로 인지했다. 조사위원회에서는 결과적으로 거래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았고, 교단과 기노시다측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서로 다른 목적과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기노시다측에 치바법인 책임역원에 대한 선임 권한을 이양할 당시, 책임역원(이사) 1인(교구장, 혹은 대리인)을 참여시키도록 하여 법인관리의 연결고리를 형성해 두고자 하였으나, 이군도 교무를 국내로 복귀시킨 이후 새로운 교무발령을 통한 책임역원을 선임하지 않는 등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법인관리를 하지 못하고 방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조사위원회는 '치바법인이 매각됐다기 보다 오히려 교단의 해외 법인 관리 소홀에 의해 운영권을 상실한 사건'이라고 결론내렸다.
▲ 기노시다 가스시로(木下勝四郞) 사장.
조사위원회 조사 이후 남은 의혹들

조사위원회가 밝힌 결과보고를 참고하면 오까야마·치바법인 사태 원인을 교단 행정 시스템의 대체적 문제로 파악했다. 명확한 책임 소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첫째, 원기78년(1993) 4월 오근진의 사표로 교단이 치바법인을 인수한 상황이었다. 이듬해 6월에는 오오끼가 교단 몰래 오까야마법인의 대표역원을 기노시다로 팔아넘긴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원기80년(1995) 교단측에서 조정근, 이철행, 김정용, 김윤중 교무 등 교단 수뇌부들이 오까야마법인을 인수한 기노시다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차 일본을 방문한다. 교단은 일본 법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지만 원기82년(1997) 하야시가 총부에 방문해 '김상원 채무에 대한 교단 변상'을 독촉할 때까지 일본 법인의 안전대책에 대해 여전히 무방비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당시 교단에서 책임 소재 파악은 어떻게 진행했으며, 일본 법인 안전대책이 없었던 데에는 어떠한 입장이었는지 밝혀 있지 않다.

둘째, 조정근 교무는 원기85년(2000) 11월13~14일 치바법인 공원묘지 허가가 나온 기노시다를 축하하러 일본에 방문한다. 그리고 다음날 15일 법인등기부에서는 대표역원이 이철행에서 스즈키 켄이치로 변경된다. 교단적 공의절차가 없이 이런일이 이뤄졌는지, 생략됐는지 분명한 설명이 없다.

셋째, 원기90년(2005) 당시 치바법인 책임역원으로 있던 이군도 교무를 국내로 복귀시킨 후 후임을 보내지 않았던 이유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후 오까야마·치바법인에 대한 교단차원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시점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오까야마·치바 법인 사태의 본질은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채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 것에 있다. 관리 소홀도 책임이지 않는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