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OCED 중 한국만 없어
-국민주권 실현 위한 핵심적 개혁과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만18세 선거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는 한국YMCA전국연맹이 주최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및 18세 참정권 실현 한국YMCA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참가자들 손에는 빨간색 바탕에 '18 내 나이가 어때서 투표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청소년들은 필요할 때만 국민이고 시민인가' 등이 적힌 플래카드도 들려 있었다.

주최 측인 한국YMCA 관계자는 "세계 92%의 국가가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유일하게 18세 선거권이 없다"며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핵심적 개혁과제라는 점에서 18세 선거권 부여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딛고 2월 국회 개혁법안들에 대한 기대가 커 18세 선거권은 낙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자유한국당의 '교실의 정치화' 논리로 2월 국회에서의 선거연령 하향 조정은 무산됐다. 만 18살인 고등학교 3학년이 선거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야 합의에 실패하면서 대략 60만 명으로 추정되는 청소년,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또 다시 미뤄졌다. 야권은 3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한 번 통과를 시도할 예정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으나 여당의 반대로 번번히 실패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안전행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만18세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을 반대하는 논리 중 흔히 거론되는 것은 18세는 아직 정치적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선거인 만큼, 애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세계적인 추세

그러나 세계적으로도 선거연령은 낮아지는 추세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235개국 중 선거권 19세 이상인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13개 국가가 있다. 중화민국, 나우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카메룬, 가봉, 사모아, 통가 등이다. OECD 34개국 가운데 19세 선거연령을 고수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치학 박사인 김상국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선거연령을 18살로 바꾸는 것은 하향이 아니라 이제야 OECD 기준으로 정상화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8세 선거권은 정치권이 베풀듯 선거연령을 낮춰주는 시혜성 권리가 아니라, OECD의 표준으로 정상화하는 기본 조처라는 얘기다.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오래전부터 18세 선거권 부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적으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하는 추세이고, 병역법, 국가공무원법 등 타 법률의 연령규정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선거권 연령을 현행보다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지난해 8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선거권자의 연령을 현행 19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 결혼도 18세면 할 수 있다. 하지만 투표는 못 한다.
▲ 병역 의무는 18세부터 부여된다. 하지만 투표는 못 한다.
대선 투표권, 18세 고3 2% 불과

많은 사람들은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추면 막연하게 고3 학생들이 대거 선거권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서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신규 유권자 중 고3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선거일에 따라 다르지만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본다면 2% 정도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차기 대선에 적용되기 어려움을 감안해 차차기 대선을 기준으로 따져보자.

만약 3월 초 탄핵이 인용돼 차기 대선이 5월 초에 치러진다면 차차기 대선은 대통령 임기 종료 60일 내의 기준으로 3월 초가 된다. 즉 3월 이전에 생일을 맞이한 고3들만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기껏해야 2%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나머지 98%이상의 고3 학생은 18세 선거권시대에도 대통령 투표권이 없을 게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만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출 경우에도 선거권을 획득하는 고등학생의 비중은 아주 낮다. 투표권의 혜택은 압도적으로 대학교 1학년 학생이나 고졸 1년차 사회인(취업생과 재수생)들에게 돌아간다. 자유한국당의 18세 인하 반대 논리, 즉 고교생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는 그래서 군색하고 비현실적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월9일 국회 연설에서 "지난해 4월13일 총선에서 대학교 1학년 학생 중 80%가 만19세 이상만 투표권을 주는 현행 법률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면 만18세 선거권 부여 반대이유로 '미성숙하다'는 주장은 타당하고 합리적인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18세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고3 연령에 있는 시민들이다. 이미 많은 현행 법률조항들이 만18세에게 병역의 의무와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자격,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신용카드 발급과 운전면허 취득도 가능한데 유일하게 투표만 할 수 없다.

"투표는 민주주의 꽃이라는데…"

우리는 '미성숙한 18세'에게 전쟁위협이 상시화돼 있는 분단된 나라의 국방을 지키게 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책임지게 하고 있다. 또 '미성숙한 18세'에게 국민의 안전과 복리증진을 위한 공무수행을 맡기고 있다. 나라를 지키고, 공무를 수행하고 결혼을 하는 모든 행위는 가능한데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뽑는 투표 행위는 안 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1월1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18세 선거권 공동행동 네트워크' 주최로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들과 청소년지도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국회의원 등 총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7 국회 청소년 참정권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최윤진 청소년학과 교수는 "여성의 참정권은 20세기 들어오면서 겨우 생겼고 흑인들의 참정권도 불과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며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제한 기준이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연령제한에 대해서도 후세들은 말도 안 되는 제한이 있었다고 비판할 것이다"고 말했다.

1월19일 유튜브 채널 '프란'에는 '만18세 선거권 반대 의견에 댓글을 달아봤다'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 등장한 학생들은 청소년 단체 '틴즈디모'의 회원들로 이들은 만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주장에 반박하는 형태로 의견을 펼쳤다. 김현기(15)양은 '부모나 선생님의 의견에 휩쓸리기 쉽다'는 논리에 "휩쓸렸으면 저는 현재 친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윤(15)양은 "어른들은 많이 알아서 박근혜 뽑았나?"라고 물었다. 이용기(17) 군은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데 만18세 청소년들도 그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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