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얼마 전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욕을 다 마치고 탕에서 나와 옷을 챙겨 입고 있는데 어디선가 '야옹야옹'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양이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아 "내가 잘못 들었구나" 하고 입고 있었던 옷을 마저 챙겨 입고 사용한 수건을 바구니에 넣고 오는데 이번엔 확실하게 또 어디선가에서 '야옹야옹'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쪽 구석 옷장 위에 고양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고양이 형태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욕탕 안에서 처음 본 고양이라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옷장으로 와서 소지품도 챙기고 안경을 쓰고 나오는데 또 다른 곳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또 있나 싶어 그 소리를 따라 고양이를 찾으러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아니 이럴 수가.

그 고양이 울음소리는 진짜 고양이 소리가 아니라 87번 옷장 속에서 울리는 누군가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나는 좀 전에 눈인사를 한 고양이가 의심스러워 다시 가서 확인해 보니 그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조그마한 나무판자였던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헛것을 보고 진짜 고양이인 줄 알고 눈인사까지 했던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핸드폰 벨소리가 진짜 고양이 울음소리라 생각되니 움직이지도 않는 나무판자를 살아있는 고양이로 착각하고 눈인사도 했던 것이다. 시력이 많이 나쁘지 않아서 안경을 쓰지 않았더라도 웬만한 거리라면 나무판자인지 진짜 고양이인지 구분할 시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벨소리가 진짜 고양이 울음소리라는 것에 속아 내 생각으로 살아있는 고양이를 만들어버린 셈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는가. 수많은 경계 속에서 살면서 나도 모르는 착각에 빠져 그 경계에 속아서 살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경계에 속고 사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상황에 다른사람은 즐거워하는데 나는 짜증내며 사는 경우도 있고, 누구는 단돈 만원에 만족하며 사는데 누구는 일백만원도 부족하다며 투덜대고 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스승님들은 늘 순간순간 공부인의 마음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대산종사는 동산선원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속아서 사는가, 기쁨 속에서 사는가. 잘 생각해 보아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어느 학생이 "공부가 잘 되지 않는데 어떻게 표준을 잡고 가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대산종사는 "대종사님이나 정산종사님이나 과거 성현들은 큰 공부를 법도에 맞도록 생명을 바치는 용맹정진함으로 하셨다. 학생 때는 계속 법도 있는 생활하기가 어렵겠지만 잘못 저지른 것 생각 말고 계속 마음만 변치 말고 꾸준히 하도록 노력만 하라. 그것이 수도인의 생명이다"고 말했다.

공부인으로 살아가면서 경계에 속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은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고 큰 서원을 다시 챙겨 공부인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에 공들인다면 내가 지금 속고 살고 있는지, 공부하는 기쁨으로 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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