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오성 교무/송도교당
뒤돌아 설거지를 하면서도 등뒤에서 움직이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며 '어허! 안돼!' 하면, 아이는 '엄마는 눈이 뒤에도 달렸다'고 확신한다. 천안통인 셈이다. 아이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척척 알아듣는 엄마는 언어 이전의 소리도 듣는 천이통도 했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다 알아내는 타심통도, 아이에게 무슨 일만 있으면 열 일 제치고 재깍 나타나 해결해주는 신족통도 가졌다.

아이 눈에 엄마는 모든 것을 다 알아 해결해주는 신과 동급으로 비친다. 양육하는 이에게 길러지는 심성과 불가사의한 능력이 모성이다. 세심한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피며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키우고 책임져가는 과정에서 길러진 역량이다. 우주에, 본성에 가득한 이 불가사의한 역량은 누구나 가져올 수 있는 모두의 것이다. 단지 절박한 필요에 의해 활용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잠재된 채로 흘러갈 뿐이다. 나를 넘어선 존재, '엄마역할'을 하다보면 천수천안의 역량이 필요해져서 그런 불보살같은 역량이 생긴다. 나 개인으로만 살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 그런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불보살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을 얻은 불보살이 되어서 중생제도라는 '불보살 역할'을 하다보면 '불보살성'이 길러진다. 불보살이 중생제도의 결과 생긴 심성과 불가사의한 역량을 모성에 견주어 불보살성이라 명명해본다. 불보살에게 중생은 자녀다. 자녀들인 중생들이 괴롭다고 울고불고하니 어떻게 구원해 줄까 대자대비로 노심초사하며 단련한 역량들이 있다. 수없는 생을 통해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중생들을 제도해가는 과정에서 점점 커져간 '불보살성'이 바로 삼명육통(三明六通)이다. 중생이 없으면 단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니 중생 덕에 얻은 신통인 셈이다. 중생은 불보살이 복전이요 불보살은 중생이 복전이라, 서로서로 덕을 본다.

삼명(三明)은, 천안명, 숙명명, 누진명이며, 육통(六通)은, 여기에다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의 세 가지를 더 추가한 것이다. 불보살에게 갖춰진 신통력이며 불가사의한 능력들이다.

안명(天眼明) 천안통은 무명으로 인해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는 중생의 모습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이다. 숙명명(宿命明) 숙명통은 중생들의 과거 모든 생의 일들을 자유자재로 다 아는 능력이다. 누진명(漏盡明) 누진통은 고통의 근본원인을 알아서 삼세 모든 번뇌를 능히 끊을 수 있는 지혜다. 천이통(天耳通)은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다 들을 수 있는 신통이며, 타심통(他心通)은 중생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아는 능력이다. 신족통(神足通)은 자유자재로 몸을 바꿔 나타나는 여의통이다. 일체가 중생제도에 필요한 역량들 아닌가.

모성과 불보살성 모두 울고불고 하는 자녀를, 중생들을 어찌할까 어찌할까 애태우며 대자대비심의 씨앗이 발아한 결과물이다. 못할 것이 없는 것이 부모며 불보살인데 어찌 이 여섯 가지 뿐이랴.

무량하다. 삼명육통을 불보살이 되면 단번에 주어지는 능력으로만 보고 부러워한다면 철없는 소견이며, 단지 신통력만 얻고자 공들인다면 철없는 자가 칼을 쥐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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