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원 교도/영광교당
상상못할 요구로 괴롭히던 민원들

원망심·분별심 놓고 모두 껴안아

자녀고민, 기도로 원하는 바 뜻 이뤄



공부담을 준비하며 원불교를 다닌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20여 년 동안 나는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가.

나는 원기81년에 김원옥 교도의 연원으로 영광교당에 입교했다. 초기에는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때라 마음이 요란할 때가 많았는데 일요일 법당에서 설교를 듣고 있으면 법문이 다 내 이야기인 것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툭툭 떨어지는 눈물과 내 마음을 보며 편안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돌리는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음을 정리하고 집에 오면 다시 웃으면서 가족을 대할 수가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종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몇 년 동안 그냥 일요일이면 교당에 가는 날이라 생각하고 다니다 보니 3년쯤 지나자 남편이 스스로 입교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 교당도 다니고 훈련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대화가 이뤄지고 운영하는 사업체에도 그 가르침이 반영되게 되었다.

한 예로 우리가 하는 사업은 건설폐기물재활용 사업인데, 공장 주변에 늘 술 마시고 민원을 넣는 사람이 있었다. 초반에는 정말 어떻게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요구를 해왔다. 어떤 날은 공장 운영을 중지시키고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전화를 받지 못하도록 할 정도로 괴롭혔던 사람이다.

이렇게 10여 년을 이웃으로 지내오다가 어느 날, 그가 우리 회사에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원불교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생에 내가 잘못을 많이 해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미운 마음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몇 달 뒤 그는 술을 마시고 전화해 나에게 술을 사서 보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응대하지 않고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혹시 하지 않았으면 오라고 했더니 창피해서 못 온다고 했다. 나는 밥과 국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쳐다보며 "그냥 술 먹고 죽게 놔두지 왜 왔느냐"며 "나 죽으면 편할 텐데 형수는 정말 나를 미워하지 않는가 보네요"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 후로 민원은 없어졌고, 2개월 만에 그 사람은 열반했다. 내가 원불교를 몰랐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었을지, 진정으로 미운 마음을 없앨 수 있었을지 돌이켜 반문해 본다.

다음은 기도에 대한 나의 체험이다. 친정어머니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평소 "기도가 따로 있다냐" 하시며 골목청소라도 한 번 더하고, 동네아이들이라도 더 살펴주는 게 기도 아니겠느냐고 늘 말씀했다. 그때는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교법을 알고부터는 그것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몇 년 동안 기도를 하면서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해 훈련을 나면서 나의 아이들, 가족들, 회사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을 위한 기도를 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습에 젖은 기도를 하다가도 이 각오가 생각나면 다시 기도를 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해, 교당 반백일 기도를 시작하면서 주변에 몸이 많이 아프다는 아이의 소식을 듣게 됐다. 나는 교무님에게 이 가정을 기도문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47일 동안 새벽기도를 다녔다.

이때처럼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 적이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나만 성실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많이 배웠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그 아이는 어려운 병마를 이겨내고 지금 영광원광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다. 그의 부모는 봉사도 열심히 하는 멋진 도반이 됐다.

또 한 번은 아들의 재수가 결정되면서 나는 엄마로서 해줘야 할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에 100일 기도를 시작하게 됐다. 100일 기도를 하며 나는 아들의 수능 날까지 법문사경과 108배를 하기로 했다. 날마다 기도금을 준비하고 형식과 시간은 상황에 맞게 하되 목적한 바는 확실하게 이행했다. 100일째 되는 날, 교당에 와서 100일 기도금을 올리고 해제식을 가졌다. 기도는 그런대로 어렵지 않게 했지만 법문사경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출장을 가야할 일이 많은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교전과 노트를 챙겨야 했고, 만약 동행하는 사람이 있는 날이면 자동차 안에서 단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수능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사경을 했다. 아이의 노력과 나의 기도는 좋은 성적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결과를 안겨줬다. 이렇게 기도의 참 맛을 본 나는 이후로 생활 속에서 늘 기도가 함께해 감사생활이 절로 된다.

말로만 하고 머리로만 하는 신앙이 아닌 생활 속에서 녹아 있는 신앙인이 되고자 챙기고 노력하는 남편과 나의 모습이 지금의 안정된 가정과 회사를 이뤘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지난해 '원타원'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원불교인이 되어 처처불상 사사불공으로 정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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