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불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가 목탁이다. 나무를 방울 모양으로 깎고, 가운데를 반 정도 가른 뒤 속을 파내 완성한다. 나무의 속이 공(空)하지 아니하면 공명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그 속을 파내야만 한다. 소리의 공명을 색(色)이라고 한다. 소리의 색은 공명통이 공하지 아니하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공을 두드려 색을 만드는 것이 목탁이다.

이십여 년 전, 지리산 실상사에서 오래 묵은 적이 있다. 도법, 수경, 연관 스님과 교류하며 요사채 한 칸을 얻어 지냈다. 밤마다 흉몽에 시달리고 새벽마다 가위에 눌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내 욕망의 울울창창함 때문에 실상사라는 좋은 절에 있으면서도 나는 괴로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고 있으면 정각 새벽 3시에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치는 듯 마는 듯 '토도독'으로 시작되는 목탁소리와 함께 도량석이 시작되었다.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며 도량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목탁을 치는 도량석은 실상사를 떠난 뒤에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실상사를 떠난 뒤에 시민사회운동에 복귀하여 '통일맞이(늦봄 문익환목사 기념사업회를 겸하고 있는 통일운동 조직)' 사무처장의 직임을 맡게 되었다. 김상근 목사를 비롯한 NCCK의 여러 목사들과 함께 통일운동을 함께 했다. 대학시절에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과 아주 친하게 지냈으니 가톨릭과도 인연이 참 깊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겨울이었다. 그 무렵 중국 심양의 날씨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심양공항 활주로에 눈이 쌓여서 비행기가 뜨느니 마느니 하던 그런 때에 심양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다.

당시 나는 6.15남측위원회 백낙청 상임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남북민간교류의 최전선에 있었다. 북측위원회에서는 남측의 '1이3정'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 때였다. '1이'는 정책위원장 이승환을 가리키는데 재작년에 입교하였다. '3정'은 대변인 정인성 교무, 남측위 사무처장 정현곤, 비서실장 정도상을 의미한다.

북측은 '1이3정'을 반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는 남북교류의 최전선에서 북측 정부나 남측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았다. 우리 '1이3정' 팀은 남북민간교류가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고 균형과 절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회의장소가 북한이 운영하는 칠보산 호텔이어서 남측 대표단도 그 호텔에 묵었다. 어느 새벽, 한참 가위에 눌리고 있는데 옆방에서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목탁소리에 가위는 물러갔고 나는 땀에 흥건히 젖은 채 깨어났다. 옆방의 목탁소리는 마치 도량석하듯이 내 방을 청량하게 해주었고 나를 깨운 것이었다.

날이 밝아 옆방에 누가 묵는지 알아봤더니 정인성 교무였다. 정인성 교무는 호두알만한 목탁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목탁을 보는데 어떤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날로부터 6년이 흘렀고, 원불교에 입교하였다. 그 새벽 칠보산 호텔의 옆방에서 들려온 목탁 소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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