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도덕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소태산은 도는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하는 것을 말하며, 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모든 곳 모든 일에서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일 큰 도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이며, 큰 덕은 이 대도를 깨달은 사람이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삼계화택에 헤매는 일체 중생을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도덕을 다룸에 있어 가장 큰 현실적 사안은 선악의 문제이다. 이는 종교인의 사회적 역할 중의 하나가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여 정의를 실천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이 세상을 선악이 투쟁하는 장으로 보았다. 신학에서 악은 피조물이 신의 뜻을 거스른 것이며, 섭리의 방편이라고 한다. 만인투쟁의 정치론을 주장한 토머스 홉스는 자신의 보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향하는 운동은 생명창조의 선행이고, 반대로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운동은 생명파괴의 악행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한 이치라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한 주자는, 품부 받은 인간의 기질에 청탁의 차이가 있어 지나치면 악이 되므로 이를 순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순연한 본심이 진리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한 왕양명은, 내 안의 지혜를 완전히 밝혀 완수해야 하며, 따라서 앎과 행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태산은 우주만유의 본원인 인간의 본성은 무선무악한 동시에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상대적인 선악을 초월한 진여자성을 회복하면, 자연히 자비의 마음이 구족한 부처의 행이 나타난다고 하는 대승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마음에 우주를 삼킬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계문과 솔성요론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시선법에서 일이 없을 때는 일심을 양성하고, 일이 있을 때는 정의를 실천하라고 한 것 또한 선한 업을 창조해 내는 인간 성품의 원리에 의거한 것이다. 인간이야말로 이처럼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일원상의 진리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제불제성의 심인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신은 물론 고해 속의 중생을 제도할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의 모든 악은 자타 분별로부터 발생한다. 최근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시하는 예절, 효도,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의 핵심 덕목은 이러한 분별심을 제거하는 것에 기반을 둔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되어야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실질적인 사회도덕이 될 수 있다.

물질문명은 선과 악이 함께 진화한다. 따라서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 선을 받들어 행하라)'의 가르침을 통해 무한은혜의 덕상이 드러나는 도덕문명사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개교의 동기이자 목표이다. 도덕은 당위를 넘어 현실을 지배할 때 힘이 있게 된다. 일원상의 진리가 도덕의 최종적인 근거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겨우내 메말랐던 마른 가지에서 잎이 돋으며 꽃이 피듯, 고뇌 가득한 우리 마음도 무한한 선과 은혜를 생산하는 힘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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