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불법이 무상대도인 이유는 소태산이 서품에서 밝혔듯이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성품의 원리는 인간의 무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인간의 마음은 문명을 건설하기도 하지만 파괴하기도 한다. 극락을 만들기도 하지만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보물을 간직한 성품을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최상의 가치를 발휘하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

둘째, 생사의 큰일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영원으로 확장하는 길이다. 모든 만물은 유한하고, 무상하다. 생멸을 거듭하지만 다음 차원으로 진급하게 하는 무한 생명의 활동이 있다. 따라서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한 존재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다. 석가모니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조사들은 이 문제를 추구해 왔다.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셋째, 인과의 이치는 삶의 원칙을 말한다. 양심은 인과가 주체가 된 삶을 말한다. 이를 확장하면 인류사는 인과의 역사를 증명하는 과정이 된다. 인과를 통해 인류문명이 규정되어 온 것이다. 정의, 평화, 자유, 인권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은 곧 진리가 자신의 성격인 인과의 밝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보에 대한 인간의 희망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넷째, 수행의 길은 무상불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는 힘을 부여한다. 우주와 일체가 되는 위없는 불도,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무상정등각,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무상의 지혜는 수행을 통해 갖추게 된다. 수행은 우리의 삶을 진리의 세계로 이끄는 힘인 것이다.

무한한 지혜를 통해 무한한 복덕을 쌓는 길이다. 자신의 삶을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힘,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길어 올리는 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힘은 곧 수행에서 나온다.

불법은 이처럼 윤리관, 종교관, 신앙관, 수행관을 비롯하여 문명과 문화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불이다. 인류사에서 불법의 전파야말로 전환의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현사회의 욕망을 극대화해가는 자본주의를 근본에서부터 성찰하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 환경의 위기 또한 불법을 통해 전 지구적 통찰을 가능하게 하며, 치유의 힘을 주고 있다. 또한 불법은 적대하는 증오심을 제거하여 투쟁에서 돌아와 상대방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무엇보다도 불법은 인간을 늘 새롭게 규정하고 인도한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성별, 계급, 피부의 색을 무화시키며, 미추, 선악, 정예(淨穢)를 정화하여 지고지선, 무위청정의 길로 가게 한다. 또한 자신을 흐르는 강물에 맡기면서도 자유를 만끽하는 임운등등 무애자재의 대열반, 대해탈의 길로 인도한다. 이어 그 힘으로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대동세계를 열어간다.

모든 중생과 세계를 남김없이 포용하여 행복의 정토낙원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이 2천 5백 년 동안 생명력을 발휘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은 동진(東進)하고, 이제는 서진(西進)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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