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무척이나 우울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지난해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마치고, 교단은 교화현장의 기대와 산적한 혁신과제에 이렇다 할 정책적 대안이나 재가출가 교도들의 마음에 불을 지필 ‘의식의 역동성’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단에서 유일한 중·장기계획서인 ‘3대3회설계안’을 뒤적이다보면 한숨부터 터져 나온다. 정책의 기초자료가 되는 외부환경 분석만 해도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며, 내부환경에 대한 인식 또한 교도들의 변화 열망과는 요원하다.

환경분석의 비전문성과 한치 앞을 극복하지 못하는 혁신의 물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교정원은 임기 3년이라는 시간적 한계의 프레임 속에 창의적 정책기능을 담보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적어도 우리는 3대3회설계를 완수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환경분석과 실사구시적 실행에 더 정교한 공을 들여야 한다.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페이스북에서 접하게 된 한 교무님의 글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뚱아리 하나였어.” 올해 완도소남훈련원에 부임한 우세관 교무는 아무도 찾지 않는 16만평 땅덩이에 덩그러이 놓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이 때 동료 교무로부터 304만원을 받게 됐다. ‘300만원도 아니고 304만원...' “거긴 진도가 옆이니, 이 기도금으로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천도재부터 시작하라”는 삼척교당 박희종 교무의 뜻에 49일 천도재를 올리고 나니, 그날 세월호 인양 소식을 접하게 됐다.

우 교무는 ‘정성이 뭉친 감응’이라며, 조금씩 운영의 정상화를 모색하는 기회로 삼았다.

물론 개인적 신앙체험이라 말할 수 있지만 원불교 교화현장은 이렇게 이소성대, 무아봉공, 일심합력의 정신적 기초 위에 법신불 사은의 영험한 감응의 역사로 일궈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매우 진솔하고 정성된 기도운동이다. 이 힘이 재가출가 교도들의 정신을 통일시킬 것이다.

이 순간에도 성주성지에서는 평화의 기도와 경찰과의 극심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각 교당과 가정에서 펼쳐왔다.

1일 진밭교 평화교당을 찾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종 대주교도 "원불교의 사무여한의 거룩한 뜻을 살려갈 수 있도록 가톨릭에서도 ‘평화협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위한 기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그렇게 찾고자 했던 시대정신, 2세기를 여는 정신개벽운동은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 원불교는 실천의 종교’라는 아주 단순한 정언명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또한 평화의 성자 정산종사가 우리에게 남긴 큰 선물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