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영산성지는 구수산과 대덕산이 감싸고 있는 소담한 분지
소태산 대종사는 구수산의 정기를 모아 일원의 꽃 피워
영산성지 기도와 선 심정으로 순례하는 것이 입선 경지

157장) 법성에 굽이치는

이도전 작사 / 김동진 작곡

1. 법성에 굽이치는 한 줄기 물굽이가
길룡으로 돌아들어 영산성지 이루니
새 회상 터전이요 인류의 복전이라
여기에 어린 영기 온누리에 전하고자


2. 구수영봉 정기모아 한 겨울 동백처럼
병진년에 피어오른 한 떨기 일원화
새 시대의 깃발이요 인류의 빛이어라
그 진리 깨달아서 온누리에 전하고자

<후렴>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섰네라 순례의 길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섰네라 순례의 길

▲ 영광군 법성읍 대덕산에서 바라본 법성포 전경. 큰소드랑섬과 작은소드랑섬은 간척사업을 하기 전에는 섬이었던 곳으로 소드랑은 솥뚜껑의 전라도 사투리다.

새 회상 터전이요 인류의 복전이라

'법성에 굽이치는'이란 제목의 성가 157장은 '성지순례의 노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성가는 기산(起山) 이도전 교무가 작사한 것으로 성가 3장 '동방의 새 불토'와 맥을 같이 하는 노래이다.

이도전 교무는 초임 교무를 영산성지에서 근무하게 되며, 근원성지인 영산의 풍경과 그에 깃들어 있는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선진의 이야기를 몸으로 직접 체현하게 된다. 문학적 감수성이 살아 꿈틀거리던 젊은 시절의 이도전 교무는 이러한 체험과 감각감상을 순례의 입장에서 표현하여 펼쳐 보았는데, 당시 새 성가 공모에 제출하여 채택하게 된다.

이도전 교무는 '새 회상 터전이요 인류의 복전'인 '영산성지에 어린 영기를 온 누리에 전하고자' '한 마음 한 뜻으로 순례의 길에 나서자'고 노래한다.
또한 '새 시대의 깃발이요 인류의 빛'인 '일원화의 진리를 깨달아서 온 누리에 전하자'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순례의 길 나서자'고 외치고 있다.

영산성지는 법의 성인이 오신다는 법성포(法聖浦)에서 칠산 바다의 물줄기가 큰 소드랑섬 작은 소드랑섬을 굽이쳐서 산태극 물태극으로 돌아들어 길룡으로 밀려들어오고 돌아 나가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영산성지는 밀물과 썰물이 기와여울인 와탄천(瓦灘川)으로 오르내리는 산중 갯벌이다. 이를 이도전 교무는 '법성에 굽이치는 한줄기 물굽이가 길룡으로 돌아들어 영산성지 이루니'라고 멋들어지게 그리고 있다.

또한 영산성지는 구수산과 대덕산이 감싸고 있는 품으로, 구수산과 대덕산 사이를 와탄천이 흘러서 한쪽엔 구수산 구십구봉을 다른 쪽엔 와탄천을 따라 대덕산이 병풍을 두르고 있는 소담한 분지이다.

대덕산의 촛대봉은 한 밤 달이 떠오르면 마치 촛대에 촛불이 피어오르듯이 천지의 촛불인양 천지를 밝히는 천지의 촛대가 된다. 그래서인지 법성에서 성인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영산성지는 옥녀봉의 정성어린 기도 속에서 와탄천에 머리를 감고 촛대봉에 불을 밝혀 심신을 재계하고 성인을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설렘을 설레바위봉에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 구수산의 영기를 마치 동백이 한 겨울의 기운을 모아 피어오르듯 소태산 대종사는 구수산의 정기를 모아 병진년에 일원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이도전 교무는 이러한 정황을 '구수영봉 정기모아 한겨울 동백처럼 병진년에 피어오른 한 떨기 일원화'라는 멋진 시어로 그렸다.

영산성지는 깨달음의 거울이요 기운의 충전소이다. 영산성지 곳곳이 기도의 불단이요 제단이며, 깨달음의 선터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 그리고 구인선진과 함께 이룬 창립정신이 배어 있는 신령한 정기의 터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산성지에 어린 신령스런 영기를 체 받아서 온 누리에 전해야 하며, 대종사가 밝혀준 일원의 진리를 깨달아서 온 누리에 일원화를 피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순례의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영산성지를 통해 깨달음의 순례와 기도의 순례를 함께 떠나보자. 한 마음 한 뜻으로 순례의 길을 나서 보자. 영산성지 곳곳에 어려 있는 대종사와 구인선진의 피와 땀의 구도와 창립정신의 열기를 체 받기 위해 순례의 길을 나서자. 그리하여 깨달음이 꽃피고 기도의 열매가 열리도록 하자.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섰네라 순례의 길

영산성지는 소태산 대종사의 품으로 탄생·성장·구도 그리고 대각과 창립정신의 혼이 듬뿍 담겨 있는 곳이다. 이러한 소태산 대종사의 정기가 어려 있는 영산성지에서 기도적공을 올리며 기도순례를 하자. 걸음걸음마다, 대종사의 따스한 자비가 느껴질 것이다.

즐거운 일이 있는 때에는 대종사 모시고 감사기도를 올리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도 대종사님을 모시고 사죄기도를 올리며,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대종사님과 함께 결정될 기도를 올리고, 역경이 있을 때는 순경이 되도록, 순경일 때에는 간사하고 망녕된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대종사님의 품 속에서 기도를 올리자는 것이다.

또한 영산성지를 선(禪)하는 심정으로 순례하자. 걸음걸음마다 선심(禪心)으로, 대종사님의 깨달음이 깃든 영산성지를 각자의 마음을 비추어 주는 깨달음의 거울로 삼아 자신의 삶을 되비춰 보자.

즉 순례는 기도 순례여야 하며 깨달음의 순례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면의 순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대종사님의 구도와 깨달음이 각자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 그러할 때 대종사님의 깨달음과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봄소식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산성지는 대종사님의 품이니 이곳을 자비로운 대종사님이 법좌에 앉아있는 대각전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면 영산성지는 교당으로, 순례는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을 실천하는 공부가 될 것이다.

영산성지를 곳곳을 순례하는 것이 바로 대종사님 법하(法下)에서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법회를 보는 격이 된다. 순례 중 대종사님께 마음속 모든 것을 문답하고 감각된 바나 특별히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제출하여 감정과 해오 얻기를 주의하자. 분명 대종사님의 자상한 감정과 인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산성지를 기도와 선의 심정으로 순례하는 것이 바로 입선하는 것이며 정례적으로 예회를 보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이 순례로 어떠한 감각이 되었는지 어떠한 의심이 밝아졌는지를 반조하여 그 소득을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 분명 원(願)하신 바를 이룰 것이며 낙(樂)있는 생활이 되며,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순례가 교당내왕이 될 때 반갑고 기쁘고 은혜로운 순례가 되는 것이다.

원음 산책

성가 157장 '법성에 굽이치는' 성지순례의 노래를 듣노라면 어디론지 여행을 떠나고픈 약동감이 든다. 마치 밀려드는 밀물처럼 생동감이 들고 여명에 따라 세상이 밝아지듯, 이런 밀물이 온 산야에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 생기를 불어 넣어 주며, 여명이 밝아지면서 모든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듯하다.

성가 157장은 매 마디마다 부점이 있는데, 이 부점을 잘 불러야 노래의 맛이 살아난다. 이 부점은 강조와 함께 밝고 씩씩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며 또한 경쾌함을 유도하고 있다. 마치 공이 통통 뛰듯이 탄력적인 리듬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가 157장은 매 마디마다 이분음표(?)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는 뒤 음을 길게 하여 여운을 깊게 하려는 의도이다.

4/4박자는 강-약-중강-약이나, 부점으로 시작하여 이분음표로 마무리되는 형식이므로 부점에 강조를 두고 당김음에 따라 이분음표에 강조를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마디의 '법-성에'의 경우 부점이 있는 '법'과 이분음표의 '에'에 강조를 두어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성가 157장의 '성지순례의 노래'는 붓점과 이분음표로 마무리되는 형식이 연속적으로 강조점을 주면서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강박의 리듬은 우리를 어디론지 떠나도록 흥분시킨다. 그러고 한 음 한 음이 울림이 있어 마음에 공명을 주어 어딘지 감명이 있게 한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설레라 순례의 길'에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정성을 모아 순례를 떠나고 말겠다는 다짐의 마음으로, '나설레라'에서 클라막스로 감정을 올려 불러야할 것이다.

성가 157장 '법성에 굽이치는'은 김동진 작곡으로 원기 75년(1990) 교화부에서 성가로 제정됐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