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존재의 근원'이라고 발음하거나 쓸 때마다 나는 어떤 공허에 시달려야 했다. 도대체 그 근원이란 것이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늘 의문이 들었다. 몸으로 감각할 수 없으니 '존재의 근원'은 구체가 아니라 언제나 추상이었다. 몸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 그 근원에 대해 어떤 스승이나 철학자도 시원한 대답을 내린 적이 없었다. 다만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존재의 근원을 '여호와'라고 했고, 불교인들은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고 했다. 원불교는 '성품'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이라고 했고 또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나는, 모호하게도 뼈라고 생각했다.

오늘 비로소 그 뼈에 대해 생각했다. 뼈는 날마다 부서지고 날마다 새로 만들어진다. 뼈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낡은 뼈는 부서지고 새로운 뼈가 그 자리를 채운다. 뼈는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뼈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치밀뼈'와 '해면뼈', '신경세포'로 꽉 차 있는 단면이 보인다. 거기다가 '세포의 엔진'이라는 미토콘드리아까지 존재한다.

치밀뼈와 해면뼈, 신경세포와 세포의 엔진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아주 촘촘하게 겹쳐 있으며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연기(緣起)되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의 가장 기본단위인 세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분홍색의 타원형 구조를 갖고 있다. 뼈의 성장과 구조에 관여하는 세포 및 뼈는 다음과 같다.

<조골세포 : 치밀뼈의 골소강 속에 있다. 새로운 뼈를 만들어 뼈의 강도를 유지. 파골세포 : 뼈에 있는 커다란 세포로 뼈를 끊임없이 파괴해 새로운 조직으로 대체되도록 함. (로버트 윈스턴 책임편집, 김동광·이용철 옮김, 〈인간〉 사이언스 북스 2006년 64쪽)> 뼈는 단백질, 무기질, 수분을 머금고 있는 살아 있는 세포다. 파골세포는 늙고 병든 뼈를 파괴해 그 자리에 조골세포가 새로운 뼈를 만드는 것이다. 오래된 뼈를 분해하고 새로운 뼈를 생산하는 과정은 일생 동안 반복된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척추동물은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파골세포와 조골세포의 작용이 어긋나고 고장이 생기면 병이 든다. 골다공증이 오는 것이다.

골다공증은 인간의 직립을 방해한다. 척추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직립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육체를 감당하는 뼈가 든든하게 몸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육체의 뼈가 허물어지면 인간은 직립하지 못한다. 직립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인 것이다.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뼈를 세워야 한다. 마음공부란 마음의 뼈를 든든히 세우고 마음의 살을 빼는 일이다. 짜증과 거친 말투, 욕심과 질투 등으로 마음에 해로운 살이 찌면 마음의 뼈에도 병이 든다. 즉, 마음의 체성에 병이 드는 것이다. 마음에는 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뼈가 존재하려면 반드시 살이 있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이 마음의 살과 뼈가 건강하게 마음운동을 하는 것, 이것이 존재의 근원을 유지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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