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야말로 봄꽃들이 만개한 때입니다. 제가 강의하러 다니는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에도 산수유, 목련, 매화, 개나리 등이 만개했고 근처 산속 곳곳에 큰 나무 사이로 수줍은 듯 진분홍 자태를 드러내는 진달래도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봄꽃 여왕 자리는 아무래도 벚꽃이 차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곳에서나, 즉 아파트 단지, 가까운 공원, 학교 캠퍼스, 공공기관의 정원 그리고 주요 도로변 등등 어디서나 벚꽃은 우리의 눈길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벚꽃 축제가 한창이지요. 이 글을 읽으실 때는 아쉽게도 대부분의 벚꽃축제들이 이미 끝나버렸거나 끝나가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축제만 열거하더라도 제주왕벚꽃축제를 시작으로 섬진강변, 화개장터, 가장 인기 있는 진해군항제, 대구 팔공산, 김제 모악산, 제천 청풍호, 강릉 경포대를 거쳐 서울 주변의 용인 에버랜드, 여의도 윤중로, 잠실 석촌호수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벚꽃은 아름다움으로도 이런 주목을 끌 만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짧게 머물고 만다는 점이 우리 마음을 더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벚꽃이 일본 국화이고, 축제가 열리는 곳 대부분의 벚나무들이 일제강점기에 식재된 점을 들면서 벚꽃의 인기를 시샘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마음에 굳이 그렇게 정치적 요소를 섞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벚꽃의 아름다움을 마찬가지로 찬미하고 있으니까요. 기실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왕벚나무는 원래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야생에서 자라는 산벚나무가 옛날부터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분당 중앙공원의 벚나무.

그런데 이렇게 꽃이 한창 아름다울 때에 좋아하던 벚나무를 꽃이 지고 나서 만날 때도 식별할 수 있으신지요? 제가 물어본 많은 분들이 벚나무와 느티나무를 단번에 구분해 내지를 못했습니다. 버찌가 달려 있을 때 다시 한 번 식별할 수 있을 경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기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가까이 자라고 있는 벚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는 점은 저와 같이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종사님이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천지의 은혜 그 중에서도 공기와 물의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벚나무를 비롯한 주변의 나무들은 우리에게 꽃의 아름다움만을 선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벚나무와 같이 우리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은 꽃이 아니라 하더라도 녹색의 모습으로 콘크리트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우리 곁을 찾아오게 하는 보금자리 역할도 합니다.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뿜어내는 산소가 도시의 공기를 맑게 만드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고 있는 나무들에게 우리는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싶어서 하는 넋두리입니다.

그건 그렇고 꽃이나 열매가 없는 벚나무를 식별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역시 잎입니다. 벚나무의 잎은 갸름한 타원형의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나뭇잎 모습입니다. 끝이 뾰족하게 길어진 모습이 구분하는 포인트이지요. 잎이 떨어져 버린 때는 나무 등걸의 갈라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벚나무는 대부분의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게 가로로 껍질이 벗겨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화정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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