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전 기자
시골에서 태어난 기자는 집안일을 맡아야 한다면서 처음으로 주어진 일이 일곱 살 때 소에게 풀을 먹이러 산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산에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마음대로 날뛰는 송아지를 놓쳐 무서웠던 기억은 인생 최초의 공포다. 그렇게 집에서 소도 기르고 닭도 길렀지만 먹지는 못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육식은 명절에도 먹어보기 힘든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다. 성인이 돼 직장에 다니면서 회식 자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어 육식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슬그머니 시작된 육식은 30년의 직장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이제 광범위하게 스며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1.3kg으로 1970년에 비해 9배 이상 증가했다.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낮아져야 했고 예전처럼 들판에서 마당에서 외양간에서 키우던 방식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게 됐다. 수천 마리를 한꺼번에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고기를 싸고 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바빠 요리할 시간이 없을 때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다 굽기만 하면 되고 갑자기 준비해야 하는 자녀 친구 초청 생일 파티도 치킨 몇 마리 배달시키면 뚝딱 해결된다. 우리가 이다지도 쉽고 싸게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된 대가는 너무 크다. 2년 간격으로 반복되는 AI와 구제역은 반경 3km 이내 멀쩡한 동물들을 몰살시키는 죄의식의 상처를 남긴다.

닭은 A4용지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햇볕도 받지 못한 채 사육되면서 항생제도 소용없어 30일 만에 도축되고 있다. 예전 1마리 가격으로 2마리 닭튀김을 먹을 수 있게 된 이유가 병아리 상태에서 도축되는 열악한 사육환경 덕분이다.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며 소비하는 곡물이 굶주리고 있는 인간 수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라고 분석해놓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기자가 소심한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유다. 게다가 남태평양 섬나라인 투발루가 가라앉고 있어 전국민이 이주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 원인도 대량 가축 사육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굽고 있던 삼겹살을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다.

연고 없이 사육을 먹지 않는 이유가 계문을 지키기 위해서거나 거창한 환경 운동에 몸담았기 때문이 아니다. 함께 누리는 천지 은혜 속에서 환경에, 동물에 조금이라도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해서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 되고 복 되는 이치를 알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죄를 짓는 수가 허다하나니라"고 한 대종사님 말씀이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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