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자유를 꿈꾸며 사람을 그리고, 빚고, 깎고…"

▲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은 사면체 박스형 건물이 이어지거나 독립돼 낮은 구릉과 편안하게 어울려 있는 모던한 건축물로 그대로가 자연풍경이 된다.

▲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화가 고암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생가.
홍성에서도 몇 십리 더 떨어진 고요하고 평온한 작은 마을. 충남 홍성군 중계리 홍천마을은 고암 이응노가 태어난 생가 터다. 고암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곁으로, '봄'의 희망을 선물하는 듯 무리지어 피어있는 수선화가 길손의 마음을 노란 봄빛으로 물들인다. 그 옆에 자리한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자연 속에 어우러져 그대로가 고향 풍경이 된다.

바깥 풍경을 듬뿍 끌어안은 건축

고암은 홍성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1904~1989)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화가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어낸 고암은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러야 했고, 다시는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열일곱 나이에 상경해서 도쿄로, 다시 서울로, 또 파리로, 쉼 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동선, 그 속에는 예술 세계와 함께 한 고암의 인생 여정 또한 고스란히 담겨있다.

끊임없이 낯선 것을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그림과 조각, 마침내는 자연과 인간까지 융화시킨 고암. 그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었던 고향 홍성에는 이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 듯,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생가 기념관은 마을 사람들이 노상 오가는 농로를 따라 들어서 있다. 그 길 나무 아래 창가에는 반가운 얼굴이 한가하게 앉아 있을 법한 시골길이다.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인 조성룡 건축가가 설계한 기념관이다. 사면체 박스형 건물이 이어지거나 독립돼 낮은 구릉과 편안하게 어울려 있는 모던한 건축물이다.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판을 붙인 각진 외모는 '바깥 풍경을 담뿍 끌어안는 구조'다. 건축이론 및 평론가인 김미상 씨는 '건축물 자체가 지형의 연장이 되고 그 내부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여겨져 감각적으로는 땅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건축물이 작게는 앞의 마당, 연밭과 들판, 멀리는 더 큰 스케일의 자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바 있다.

생가 기념관의 외관은 황토결이 부드럽지만, 안쪽 홀에서는 진회색 콘크리트 벽면이 주는 다소 묵직한 기운이 대비를 이룬다. 긴 홀에 서로 다른 네 개의 전시실이 각기 다른 각도로 경사져 이어져 있다. 마치 구불한 길을 산책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이 길은 예술로 난 길이기 이전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근현대사의 질곡 위에 난 길이자, 그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굴절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글이 공감으로 와 닿는다.

▲ 전시실 내부에는 고암의 일생과 대표 작품들을 도표로 만들어 아카이빙한 칠판이 눈에 띈다.

개관 5주년 기념전, 자연과 인간의 융화

'이응노의 집 개관 5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 고암의 일생과 대표 작품들을 도표로 만들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아카이빙한 큰 칠판이 눈에 띈다. 제2전시실에는 '새로운 세계와 리얼리즘, 이응노의 해방공간'으로 해방직후부터 50대 중반까지 고암이 풀어낸 풍속과 풍경 속에 대중들의 생활, 냄새, 소리, 분위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제3전시실은 '추상으로 가는 길, 한국전쟁 후 현대성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작품들이다. 풍경, 인물, 정물을 그리되 그 요점만 추출하고 자유분방한 붓놀림과 활달한 묵법을 앞세워 일종희 조형실험, 희필(戱筆), 희묵(戱墨)에 몰두했던 시기다. 그 성과가 1958년 열린 <도불전>이다. 이 전시로 고암은 동양화단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가라고 평가받게 된다.

옥중작,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얽혀 고암이 2년 여 교도소에 유배됐던 시기다. 그 비좁고 밀폐된 곳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고암. 간장, 휴지, 밥풀 같은 것으로 빚어 만든 작품들이나, 출소 직후 수덕여관에 머무르며 그린 너럭바위 암각화는 유명하다. <수덕여관 암각화 탁본>이 전시실에 있다.

고암은 말년에는 셀 수 도 없이 많은 사람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이른바 <군상> 시기. (1980년대) 화폭안의 사람들은 서 있거나 뛰거나 걷거나 춤을 춘다. 모여 행진하기도 한다. 수감 생활이후 오히려 사랑, 평화, 자유, 화해를 꿈꾸며 그는 사람을 그리고, 사람을 빚고, 사람을 깎고, 사람을 새겼다. 인종·민족·빈부·취향·남녀·노소·표정을 도무지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 고암이 이룬 예술 세계의 대단원인 것이다.

제4전시실은 '사생의 현대적 지층, 2000년대 수묵화' 공간이다. 정재호, 권세진, 이현호 등 수묵화 신진작가들이 고암의 사생(寫生)을 현대적 감각으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 생가기념관를 안내하고 있는 윤후영 학예연구사.
▲ 생가기념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미술전 학생작품들.

이응노 마을, '별의별' 이야기

"고암의 예술세계를 보다 넓은 지역문화 생산자원으로 재창조 할 수 없을까" 이 질문이 강렬한 화두가 되었다는 생가기념관 윤후영 학예연구사. 그는 생가기념관 외관부터 내부전시, 그리고 향후 지역과 연계한 '문화예술마을화' 프로젝트까지 꼼꼼하게 안내하고 설명했다.

그는 생가기념관과 연계한 소프트파워 차원에서 중장기적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이 프로그램 연구를 기반으로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응모했고, 지역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을 지역민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과의 문화적 소통, 다양한 예능교육과 문화활동 프로그램으로 시설을 재생하며, 결국 이를 바탕으로 마을의 자치력을 강화시키는 일에 그는 올곧은 뜻을 두고 있다. 이것이 고암예술의 군상, 인간시리즈와 맞닿는 지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사랑, 평화, 자유, 화해를 꿈꾸며, 사람이 사는 세상을 군상에 담아낸 고암의 예술세계,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응노마을에 봄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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