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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사무여한
102. 사무여한
  • 정성헌 기자
  • 승인 2017.04.21
  • 호수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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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용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수세에 몰린 병사들에게 이같이 일갈하자, 순식간에 사기가 역전돼 전장을 승리로 만들었다. '곤경에 처했을 때의 도는 찬 것이 따뜻한 것을 낳고, 따뜻한 것이 찬 것을 낳게 하는 이치와 같다(夫困之爲道, 從寒之及煖, 煖之及寒也)'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필사즉생 전략의 비밀을 가늠케 한다.

어쩌면 소태산이 구인제자에게 '사무여한'이라는 최후 증서를 쓰게 하고, 최후 희생일 같은 시각의 각자 기도봉에서 일제히 자결하라는 위태로운 경계(困境)를 내린 까닭은, 궁극 '필사즉생' 이치를 깨닫게 하려는 의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소태산이 "그대들의 전날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세계 공명인 새 이름을 주어 다시 살리는 바라"며 내린 법호와 법명은 결국 '사무여한 즉 필사즉생'의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19년간 정치적 망명을 떠돌면서 역작 <레 미제라블>을 탈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1861년 6월30일 아침 8시30분, 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레 미제라블>을 끝냈다. (중략)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외로운 투쟁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오로지 역작을 위해 매달린 끝에 완성한 기쁨의 최고 표현이었다.

오늘도 사드배치 강행 중단을 위한 평화행동이 진밭교의 '사무여한' 깃발 아래서 계속되고 있다. 사무여한(死無餘恨) 할 만큼 얼마나 사무여한(必死則生)하고 있는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卽是現今 更無時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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