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고행상…구사와 고행, 성격이 다른 두 시기로 구분해야

16~19세, 스승 찾아 끈질기게 내왕하며 속 깊은 공부하던 시기
20~24세, 하늘같이 믿던 스승과 부친 열반 후 자력수행의 시기

극빈상황 빚 독촉 시달리며 탈이 파시 장사해 채무상환하기도
종창 투성이, 복부팽만 병고에서도 오히려 구도정신은 일관돼

▲ 박청천 교무/교화훈련부
▲ 후천개벽은 수운·증산·소태산 3성의 삼천(三遷)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대종사님이 무사오도(無師悟道)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종사의 구도과정에 스승 찾아 구도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두메산골에 꼼짝 않고 방구석에 콕 박혀 자수자각(自修自覺)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구도고행(求道苦行) 없이 로또복권 당첨하듯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 툭 떨어져 횡재하는 도통은 없다.

대종사는 16세(1906) 정초에 처가에서 고소설을 접하고 19세까지 도사(道師)를 찾아다녔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구사과정(求師過程) 내역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어떠한 스승을 만나고 어떤 공부를 하였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왜 숨겨야 했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당시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십상 '구사고행상' 원기39년에 거론돼

정산종사는 1대성업봉찬대회 이듬해인 원기39년(1954) 대종사 구도과정이 무사오도인 교단 정서에 반(反)하여 '대종사 10상(相)'을 내놓으면서 대종사께서 스승 찾아 고행하셨다는 상(求師苦行相)을 공식 발표하였다.(<범범록> 시탕일기 1954. 9.8)

일제강제기에는 박처화가 스승 찾아 공부한 이야기는 금기사항이었다. <창건사>에는 정신이 이상한 병든 거지와 황소를 후려갈 욕심으로 신장을 부린다는 처사 이야기 2건만 나올 뿐이다. 박처화는 거지나 사기꾼 처사를 상대하는 쪼잔한 도꾼이 아니다. 처화의 멘토인 의형 김성섭(八山)은 음양복술에 관심이 있는 태을도 도꾼이었다. 이 무렵에 호남 일대에 태을주 치성바람이 휩쓸고 있었다. 이웃마을 구수미에 태을주 치성을 드리는 도꾼이 있어 장날마다 학산리 오재겸(四山)과 같이 가서 치성을 드렸다. 도 공부에 열화 같은 처화가 장터 도꾼 정도로 성에 찰 리 없다. 필시 전문 도꾼을 찾아갔을 것이고 그 도꾼들의 정점에는 증산상제(甑山上帝)가 있었다.

1906년 당대 조선 최고 도인은 불교계의 경허선사(鏡虛禪師)와 선도계의 증산상제 두 분이 현존했다. 이미 경허선사는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마치고 함경도 삼수갑산에 은거하여버렸고, 증산은 화천(化天) 3년을 앞두고 전라도에서 활발히 도풍을 떨칠 때라, 당신 경륜을 전할 상근기를 찾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불법연구회는 증산관련 사항은 일체 발설하지 못하게 단속하였다. 빈총도 안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철두철미 은인자중하였다. 일제는 저네들의 토속신앙인 신도(神道), 외래종교인 불교와 기독교 외는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민족종교에 대해 박멸정책을 강행하여 대종교, 보천교와 무극도, 천도교는 폐쇄되었고 교주는 죽임을 당하거나 지하로 잠적하였다.

대사모님의 증언에 의하면, 박처화는 결혼 이후 3년간 잦은 출행비용으로 가산이 기울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증산은 도나 개나 찾아오는 이들을 차별 없이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면서도 유독 영광 소년만은 제자삼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영광 소년이 오면 증산은 9년 대한에 소낙비 퍼붓듯 고무적인 법문(예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증산천사 천지공사기. 1929년 이상호가 편성했다.
초막에 성인 난다

영광 법성포에 여러 번 다녀간 증산선생은 '영광 법성에 도 실러가자'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는 도꾼 간의 연락망을 맡은 엿집 물주 송찬오(赤壁)에게 "영광에 소식 있거든 짚신 들메고 달려가거라" 당부, 영광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증산은 칠산바다의 범씨왕국(范氏; 法聖浦)을 이야기하고,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 "초막에 성인이 나온다"며, 그가 솥이라는 호를 쓸 것을 예견하였다. "솥이 들썩이면 미륵이 출현할 날이 멀지 않았다" 햇무리를 가리키며 일원시대를 예고하였다. 증산은 시루가 솥 위에 걸려야 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증산은 "나는 참 동학을 한다. 나는 수운 대선생(代先生)이다. 내 일 해 줄 대선생(大先生)이 뒤에 온다"며 중간자임을 자임(自任)하였다. "건감간진손이곤태에 통이 있다"며 "대나무 열 마디째는 두목이고 아홉 마디는 교(敎)받는다" 하였다. 또 불교혁신의 운세를 "판밖에서 이뤄진다"며 일제수난기의 처세비법으로 "농판(바보)이 참판보다 낫다"(천하농판)고 하였다.

○ 숭산님께 직접 들은 애기다. 배재고보 2학년 때, 아버님이 <천지공사기>를 보시다가 "햐, 기분 좋다! 술 한 잔 받아온나" 성각씨가 남대문시장 쫓아가가지고 술하고 횟감을 받아와서 상 차려 올렸어요. 잡수시고 "야, 니도 한잔 받아라" 해. 오죽이나 좋았으면 술을 받아오라 했겠는가. 아버지는 증산선생의 언행록 <천지공사기(대순전경)> 출간된 것을 굉장히 기뻐했다.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증산 선생은 곧 드물게 있는 선지자요 신인이라, 앞으로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는 수운 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 (<대종경> 변의품31)

○ 정산은 수운·증산·소태산 세 분을 후천개벽 성자로 보았다. 수운은 소태산의 전생이며, 강증산은 소태산의 길잡이이며 먼저 오신 선지자로 보았다.

갑자년 이전은 증산 기운이, 이후는 종사님 기운으로 일어나

○ 범산님의 <범범록> 시탕일기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1954. 10.2/ 아침부터 종일 비. <대순전경>을 읽어드리다. 정산종사 "천지대운을 자로 재듯 하신 분이다"

○ "수운 선생은 개벽의 첫 소식을, 증산선생은 둘째 소식을 전하고, 종사님께서는 개벽의 정법을 이에 천명하셨느니라."(정산종사 시탕일기, 1955. 7.18 <범범록> 556쪽)

○ "강선생·최선생이 이 회상의 길잡이시다. 대성의 출현에 앞서 반드시 선지자가 예시하는 것은 자고의 통례이다. 삼성(三聖)의 연원을 법설로 발표해야겠으며, 삼성사(三聖祠)를 세워서 향화를 드려야 할 것이다." (정산종사 시탕일기, 1954. 2.28 <범범록> 516쪽)

○ <수운선생전>을 읽어드리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차차 최 선생과 종사님이 두 분이 아니신 것을 알게 될 것이요. 강 선생 일과 종사님 일이 딴 일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정산종사 시탕일기, 1955. 7.23 <범범록> 556쪽)

○ <대산종사 법문집>에도 이런 기록이 나온다. 원기48년 1월21일/ 대종사님께서 갑자년부터 당신 기운이셨고, 갑자년 이전은 증산 선생의 기운으로 하셨으며, 선법사님께서도 '나는 대종사님 기운으로 한다' 하셨다.

○ 원기75년 7월19일/ "부처·예수·공자·노자께서는 선천의 선성(先聖)으로 다녀가셨고 수운·해월·증산께서는 선천의 말성(末聖)으로 다녀가셨다. 이와 같이 선천의 4대 선성과 3대 말성께서 다녀가신 후에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께서 후천의 초성(初聖)으로 다시 오시어 지난 갑자년을 기점으로 해서 후천시대 개벽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중략)… 우리 회상은 천불 만성의 대회상인데 이러한 회상이 되기로 하면 후천개벽의 초성으로 오신 대종사님의 근본정신을 표준 잡아서 회상을 이끌어 나아가야 하겠다."

○ 원기62년에 <원불교 교전>을 간행하였다. 증산의 제자들이 보고 증산상제의 사상과 경륜을 적실하게 드러내 정립하였다며 '박중빈은 증산의 적통 제자'라고 탄복하였다.
▲ 솥과 시루는 증정불리(甑鼎不離)다. 시루가 솥 위에 걸려야 제 구실을 한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존재한다

아버지 없는 아들이 없고 스승 없는 제자가 없다. 그 아들이 그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고 제자가 스승보다 더 위대하면 이 이상 바람직한 일이 없다. 대종사 대각하고 불경을 보고 서가모니불을 성중성(聖中聖)으로 연원을 대었다. 무사오도를 자랑할 것까지 없다. 아무리 잘 났어도 하늘에서 툭 떨어진 인물은 없다. 소태산 대종사도 스승이 있었다. 스승을 위한 제자는 조폭사회의 논리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존재한다. 스승은 자기보다 더 나은 스승을 양성해야 진정한 스승이다. 증산선생은 삼천(三遷)이 되어야 크게 이룬다 하였고 내 뒤에 큰 선생이 나온다고 하였다. 이 뜻은 수운·증산·소태산 후천개벽의 삼성(三聖; 三遷)께서 대업을 이룬다는 뜻이며 세 분이 하나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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