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어느일이나 유념공부가 아니고는 되는일이 없다

하려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한다



佛言- 吾何念고 念道하리라. 吾何行고 行道하리라. 吾何言고 言道하리라 하야 吾念諦道를 不忘須臾也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내가 무엇을 생각할꼬 도를 생각하리라 내가 무엇을 행할꼬 도를 행하리라 내가 무엇을 말할꼬 도를 말하리라 하여, 잠깐 사이라도 도(道) 생각하는 마음을 잊지 말지니라."



<사십이장경> 15장의 말씀은 부처를 이루고자 결심한 공부인은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 오직 도를 깨치고자 하는 서원을 떠나지 않아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법문이다. 큰 공부에 발심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작은 욕심은 내지 않듯이 성불을 목적하는 공부인은 세간의 모든 탐착과 애욕을 능히 불고해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만일 소소한 욕심을 끊지 못해 큰 서원과 목적을 잊어버리면, 꿩이나 토끼를 잡다가 사자나 범을 놓친 것과 같이 아쉬움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발심한 사람은 작은 욕심을 내지 말라 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명예와 권력을 갖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갖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또한 진리를 찾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끌어 줄 스승과 종교를 찾아서 헤맬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돈을 벌며,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그것을 성취하며,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도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원하는 것을 성취한 경우 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물론 현생의 노력으로만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만한 노력으로 그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행주좌와어묵동정 어느 순간에도 마음 챙김을 놓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와 대조하는 노력을 계속할 때 그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평생 도를 생각하고, 평생 도를 행하고, 평생 도를 펴기를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7세 되던 해에 하늘을 보고 의문을 일으켰고, 11세에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산신을 만나고자 삼밭재에서 5년 동안 기도를 올렸다. 15세에는 알 수 없는 존재인 산신보다 인간인 도사를 만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은 일이라 생각해 도사를 찾아 다녔다. 그것도 허사로 돌아갔기에 22세부터는 도사 만나는 일도 단념하고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하는 한 생각만 깊었고, 25세부터는 그 한 생각 마저 잊고, 말해도 말하는 줄 모르고 음식을 먹어도 먹는 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마침내 26세에 대각을 이뤘다. 대각 후 제자들을 모아 방언을 막고 혈인기도를 올려 진리의 인증을 받았다. 익산에 총부를 정한 뒤 제자들과 함께 28년간 일원회상 건설을 위해 노력하다가 열반에 들었다.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인 김광선은 "오직 이 회상을 창건하시는 일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말씀도 행동도 없으시나니, 이것이 마음 깊이 감탄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요. (중략) 영광 길룡리에서 우리 구인을 지도하사 간석지를 개척하실 때에 보이시던 성의나 오랜 세월을 지낸 지금에 보이시는 성의가 전보다 오히려 더하실지언정 조금도 감소됨이 없으시나니, 이 또한 마음 깊이 감탄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라"고 대종사의 일생을 술회했다. 회상을 창립하는 일 이외는 다른 생각, 다른 말씀, 다른 행동이 없었고, 초기에 보였던 성의가 더욱 깊어갈 뿐 감소되지 않았다는 말씀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정산종사는 "세상만사 어느 일이나 유념공부가 아니고는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유념공부란 보고 듣고 말하는 데에 대중 있게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며, 동하고 정할 때도 대중 있게 동하고 정하여 비록 찰나간이라도 방심을 경계하고 정념(正念)을 가지자는 공부이기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공하기로 하면 찰나간이라도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어떠한 사업을 성공하자면 먼저 그 마음이 오로지 그 일에 집주되고 그 생각이 그 일을 연마하는 데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떠한 사업을 성공한 후에 그 사업을 영원히 유지하기로 하면 모든 것을 무심히 하지 말고 마음을 오로지 그 일에 집주하여 연마하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대산종사도 "일원상의 진리는 끝까지 구하면 얻어지고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지고 정성껏 노력하면 반드시 되어지나니,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하고 맡기느니라"고 말했다. 하려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한다는 말씀에 소름이 돋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 법문인가? 나는 진리를 알기 위해 끝까지 구해 보았는가? 정말로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양심에 손을 얹고 정성껏 노력해 보았는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을 한다면 아마도 멀지 않은 장래에 진리의 응답이 있을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본관에는 좌산 상사의 법문이 걸려 있다. '오롯이 골똘히 간절히.' 진리를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가장 적실한 말씀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