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미래가치, 젊은 세대가 알아야"

대전광역시 제2청사에 들어서자, 오케스트라(대전시립교향악단)의 웅장한 하모니가 귀를 감싼다. 그 덕분에 정부기관에 들어온 느낌보다는 공연장에 온 기분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뒤로하고, 곧바로 문화재청장실로 직행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다. 문화재청이 세종시에 있을 거라는 편견과 무지가 발목을 잡았다.

세종시를 거쳐 정부청사로 돌아오면서 마음이 초조했다.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나선화 문화재청장(67)은 만나자 마자 질문에 일사천리, KTX를 탄 모양으로 논리정연한 답변을 쏟아냈다. 그는 "문화재 활용은 보존의 또 다른 방법이다"며 "활용 프로그램을 확대해 그 지역 문화재가 경제와 관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이공현 은덕문화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문화재청장으로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 있다면

"처음 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숭례문 부실 복원 문제로 언론의 질타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내가 할 일은 문화재 복원의 문제점을 파악해 제도를 고치고, 사람을 일벌백계해야 했다. 그래서 문화재 복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또 하나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이유를 세상에 알려야만 했다. 우리 문화재의 시대정신,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미래가치를 탐색해 젊은 세대에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화재 보존의 근본 목적을 상실하고 수리 복원만 해서는 안되는 시대다. 수리·보존·복원 중심의 행정만으로는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대학생 기자단 조직, 청소년 문화재 가치 개발과 문화재 교육팀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령 이순신 장군의 유적은 남해 10경에 위치해 관광과 역사교육에 좋은 아이템이다. 역사적인 현장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삶을 토론하고 공부하도록 했다. 지난해부터는 중학생 자유학기제를 활용해 답사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대학생 기자단에게는 문화재 현장을 취재해서 자신들의 언어로 뉴스를 만들어 홍보하도록 지원했다."

- 문화재 발굴의 현장통이라는 애칭이 있다. 이 시대 문화재청장은 어떤 자리인가

"나는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발굴한 것마다 국가 지정문화재가 됐다.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기억에 남는 발굴은 1971년 경북 영주 순흥면 신라고분이다. 고구려식 벽화고분을 발굴했는데, 남한 최초의 벽화였다. 곧바로 국가 사적이 됐다.

나는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다.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재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행정 관료였다면 시스템 안에 갇혔을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 정체성을 꼽으라면 불교와 유교문화라 단언할 수 있다. 이 시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 관련 단체나 관계자들과의 활발한 소통이다. 다행히 문화재 발굴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소통에는 자신이 있었다. 더불어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유물은 그 시대의 정신과 최고의 기술,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재의 미래가치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내가 청장에 취임한 후 산림청과 협업해 기획 조림을 시작했다. 30년 이후를 생각하며 전통 공예에 필요한 목재 등을 길러내는 데 노력했다. 닥나무, 오동나무, 육송뿐 아니라 문화재 주변(릉, 건축 등) 수종들도 관심을 갖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 사드배치 문제로 한류가 주춤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류는 계속 될 것이다. 한류를 태동시킨 문화적 유전자를 꼽는다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류는 계속 커질 것이다. 한국 문화는 중국의 것도 아닌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지중해, 심지어 미케네문명까지 실크로드를 통해 형성됐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춤과 문화를 세계인들이 감동하는 것은 그런 문화적 공감대가 바탕해서다. 이전에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불교와 유교가 전파돼 한류를 형성했고, 상감청자는 중국이 서역으로 보내면서 또 다른 한류를 만들었다. 그들이 문화적 동질성을 느끼기 때문에 호응하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동양정신의 서진(西進)시대라고. 그 시점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될 것이다. 개막식 때 가장 오래된 오대산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 소리가 세계에 울려 퍼지는 것도 의미가 크다. 물질로 황폐해진 세계인들은 동양정신으로 치유, 명상, 평화를 꼽는다. 이제 동양정신이 문화적 리더가 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지자체들은 문화재 수리 보존비로 몇 십억을 지원해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으로 1~3억 정도 지원하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문화재가 애물단지였지만 문화재 활용으로 경제적인 효과를 보면서 지자체들이 서로 예산을 달라고 야단이다. 문화재와 함께하는 야행 프로그램은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한다. 창덕궁의 달빛기행 등은 예약 없이는 참가할 수 없다. 활용 프로그램은 내가 청장이 되면서 시작했고, 이 예산은 점점 늘릴 계획이다. 궁궐스테이, 야행 프로그램에는 전통음악, 퓨전음악이 함께 한다. 문화재 활용은 보존의 또 다른 방법이다."

- 원불교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

"내가 원불교를 접한 것은 은덕문화원을 한옥으로 복원할 때다. 이선종 교무가 한번 다녀가라고 해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찾아갔다. 그런데 에어컨도 없이 한옥을 짓는 데 대단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복원 과정에서 나오는 돌이나 못, 나무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썼다. 창덕궁 옆이라 얼마든지 현대건축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옥을 고집한 것도 대단하게 생각했다. 이 인연으로 은덕문화원 일요법회에도 초대됐다. 내가 제일 놀랄 것은 흰 저고리 검정 치마의 단아한 여성교무들의 헌신이었다. 정원과 마당, 한옥을 매일 쓸고 닦는 정성이 수행자의 모습이었고, 세끼 식사를 직접 준비하는 것도 매우 인상 깊었다. 더 놀랄 일은 100년 전 원불교의 생활문화였다. 여성교무들의 복장은 모던하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교전을 읽으면서 전통에 바탕해 미래를 계획한 종교라는 느낌을 받았다. 식민국가, 폐쇄된 나라에서 인류를 구원할 사상과 메시지를 전한 소태산의 위대함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원불교가 백제문화권에서 태어났다. 문화적으로 해석한다면.

"백제는 영토 중심의 국가가 아니다. 해상 네트워크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였다. 이것은 무안, 나주 옹관묘 등 유물을 통해 나타난다. 해상 경영을 하는 백제는 국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 원불교가 백제 땅에 태어난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관 자체가 세계적이지 않나. 그런데 주목할 점은 세계 5대 문명(요하문명 포함) 중 2개 문명이 서해로 들어온다. 이 두 문명은 실크로드를 통해 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동양 정신문명의 핵심이 서해로 몰려온다. 그래서 미래 문화거점은 새만금이 될 것이다. 서해 문명 시대를 맞아 핵심 문화 인력을 우리나라가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주·부여·익산 백제문화권을 유네스코에 등재할 때 도지사와 지자체단체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두 공감하며 고대의 해상 네트워크(백제,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복원해 문화 리더가 되자 했다."

- 교단 문화에 조언한다면

"원불교의 시작점은 근대다. 문화적으로 보면 전통문화와 신문명이 접목해 있다. 이것이 원불교의 태동문화다. 이런 틀 속에 신문명을 계속 접목해야 한다고 본다. 원불교의 세계관, 종교관, 생활관 등 동양정신의 핵은 그대로 가져가며, 세계와 소통할 때 인류 정신문명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근본 핵을 변화시키지 않고, 확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은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소통이다. 더불어 교단 행정의 폐쇄성은 극복돼야 한다. 행정 시스템은 언제나 폐쇄성을 지닌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단이라는 틀이 보수성, 폐쇄성을 지니면서 현장(종단 내, 사회 등)과 소통이 부족해지는 것이 염려스럽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박물관 학예실 총괄담당, 한러 공동 발해문화유적 조사단 책임연구원, 한국 큐레이터 포럼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평화의길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예술사 도자기 고고학을 전공하는 그는 <한국의 소반>, <옹기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옹기의 특성>, <한국도자기의 흐름>, <한국전통공예 도기> <Korea Pottery>등을 저술했다. 2013년 12월26일 문화재청장에 임명된 뒤 최장기 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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