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예리 교무/미주동부교구 뉴저지교당
미국 북동부 뉴저지 주에 원불교가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2년 전인 2005년 2월이었다. 그때의 태어남은 사람으로 치자면 단지 출생신고를 한 것에 불과했다. 그때 뉴저지주에 법인 등록을 한 이유는 당시 좌산 종법사를 위시하여 중앙총부에서는 미주총부 부지를 물색하던 시기였고, 물망에 오르던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만약의 경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인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부지는 절대농지로 묶여 있었고, 농지를 중하게 여기는 정책을 펴고 있는 뉴저지 주에서는 그 땅이 종교활동으로 용도변경이 어렵다고 판단해 포기하게 됐다.

그렇게 한 번 탄생한 원불교 법인은 미동부교구에서 관리하며 뉴욕교당에 법회를 참석하시던 뉴저지의 교도들에 의해 매년 자체적으로 등록비를 내며 관리해 오고 있었고 교단의 인가를 받으며 뉴저지교당의 현재가 된 것이다. 사실 교당이 위치한 뉴저지 동북부지역 버겐 카운티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한인들이 모여살기도 하고 맨해튼과 가까운 지역적 특성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속한다.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뉴욕과 뉴저지 주가 나누어져 있으나 맨해튼의 위성도시로 위치하고 있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이유로 많은 한인 이민자들도 이 부근에 터를 잡고 살고 있으며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뉴저지 지역의 교화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꾸준히 교당이 설립되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또 뉴욕교당이 있는 퀸즈 지역이나 맨해튼 등은 모두 섬이라 그곳에 내왕하려면 한 개 혹은 두 개의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하고 더욱이 그 다리를 건너는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 교도님들이 넘나들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뉴저지 지역에 거주하는 교도님들의 염원과 교구장님의 뜻에 따라 2008년부터 매월 한차례씩 교도님 댁을 돌아가다가 이종덕 김성은 교도댁에서 주로 출장법회를 보아오면서 교당마련의 꿈을 키우던 차였다. 2010년 12월 중앙총부로부터 교당설립 허가를 받고 2011년 인사이동으로 13년의 뉴욕생활을 접고 뉴저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1월27일 인수인계를 마치고 정식으로 교당 건물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종덕·김성은 교도님 소유의 농장 (사실 이 농장은 미주총부 부지 물색 당시 후보지의 하나였던 그 농장으로 후에 교도님이 구입했고 뉴저지 초창 3개월 반 동안 임시 법당이 되어주었으니 인연지는 인연지라 생각)집에서 생활과 법회를 시작하게 됐다.

미주동부교구와 뉴욕교당과 원광한국학교와 뉴욕원광복지관이 함께 있는 곳에서 13년을 근무하다가 아직 교당건물이 정해지진 않았으나 눈비를 피할 저택 못지않은 임시 의지처가 있고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와 주시는 교도님들이 계시고, 무엇보다 늘 신경 쓸 일과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은 속에서 살다가 툭 트인 대자연과 함께 갑자기 단촐한 생활을 하게 되니 세상에 이런 일도 내게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년 봄 여름 가을학기로 진행되는 한국학교로 인해 토요일이 한가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토요일에 밭에 앉아 나물을 캐며 새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으며 진정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는 중에 우리 형편에 맞고 교통이 편리하며 한인사회와도 가까운 지역에 있는 현재의 교당 건물을 2011년 2월 28일자로 구입을 완료하고 수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27년에 지어진 건물은 외부는 보존 건물이라 그대로 두고 내부만 마을법상 실지사용은 불가하나 법당으로 써도 될 만한 공간 다락부터 지하까지 4층을 전면 수리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들의 동가숙 서가식과 많은 날 마음 졸이며 기도하며 또 새 희망을 찾으며 이루어가는 개척교화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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