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선 교도/마산교당
정부정책 무비판적 수용·성주성지수호 합력 아쉬워

정치·세계사 역량 키우고 교당 밖 너른 사회 식견 길러야



현재 교단은 성주성지 수호를 위해 출가 교화단 중심의 철야연좌농성과 기도를 온 몸으로 젖 먹던 힘을 다하여 행하고 있다. 재가교도들과 각 단체의 합력이 있으나 전체적인 동조와 합력은 아닌 듯하며 일선 교당에서 느끼는 합력의 온도는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교단적인 큰 문제가 일어난 상황에서도 법회 설교를 통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 그리고 단결 호소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며 심지어 재가교도의 눈치를 보고 보수적 정서에 영합하려는 경향마저 보인다. "이 지역은 교도들이 보수적이라 원로 교도나 법호인 교도들조차도 사드반대 이야기는 싫어한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은 무비판적으로 맹종해야만 하는 것인가?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면 바로 빨갱이가 되는 것인가?

고종이 이끌던 대한제국은 오랜 무능과 부패로 미국, 일본의 협약에 따라 일본에 넘어갔고 급기야 미국과 소련의 분할지배를 받게 됐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어 버린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상은 온 국민의 생각조차도 편 가르고 분열시켜 이제는 한 형제, 한 민족인지도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국민이 미국산 밀가루와 옥수수를 먹으며 중국산 고춧가루와 중국산 의류 등의 생필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도 강대국 논리인 공산주의,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다면 동기연계라는 삼동윤리의 대 평화사상을 신봉하는 주세불 회상의 눈 밝은 핵심교도일 것인가?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따랐던 정부의 정책과 홍보도 알고 보면 부패한 정권의 논리며 거짓말이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과 세금포탈 등의 진실을 모를 때는 모든 국정이 잘 입안되고 집행되는 줄 알지 않았던가?

예수가 처형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교 랍비의 말과 로마 총독의 판결을 믿고 예수가 나쁜 도적이라고 판단하여 돌을 던졌을 것이고, 최수운 대신사가 처형당할 때 조선의 편협한 양반들은 기뻐하지 않았던가? 플라톤도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런 자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일'이라고 하였듯이 국내 정치를 외면하며 시비 판단에 어둡지는 않은가? 세계정세에 어두워 강대국의 언론 홍보는 접하되 약소국의 억울함은 알지 못하면서 수도에만 전념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찌 제생의세를 목적하는 주세불 회상의 핵심 교도일 것이며, 시대를 향도하는 지도자일 것인가?

우리 회상은 아직도 인적, 물적으로 가난하기 그지없는 창립기인데 교단은 교도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가? 그냥 법회 참석과 봉공활동만 하면 좋아하고 있지는 않는가? 회사 직원들의 애사심과 서비스 수준이 그 회사의 성장과 몰락을 좌우하듯이 우리 회상도 우리 교도들의 지적 역량을 더욱 넓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삼동윤리에 바탕한 통합적 종교관과 진리관은 물론이고, 서세동점의 제국주의가 중동,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 아시아 등 약소국의 근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부패한 정권을 지원하며 미국의 세력을 확대하였는데 이들 정권들은 미국의 세력을 업고 부패와 잔혹한 양민 학살의 독재를 하다가 오히려 공산주의화 되어버렸다.

우리 교도들이 정치와 세계사에 대한 지적 역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적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국내와 세계 도처에서 근현대에 일어났던 슬픈 사건과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하면서 어찌 한반도와 세계 각국에 널리 법을 전할 수 있으랴. 우리 교도들이 고작 교당 안에서만 요인, 법호인, 법사라는 존대만 받을 뿐 정작 교당 밖의 너른 사회에서는 편협한 식견으로 인해 존대 받지 못한다면, 너른 세상에서는 별로 쓰임새가 없는 납 도끼요, 안방퉁소일 뿐이 아니겠는가?

〈대종경〉 인과품 26장의 법문이 요사이 가슴 아프게 새겨진다. "중생들이 철없이 많은 죄를 짓는 가운데 특히 무서운 죄업 다섯 가지가 있나니, (중략) 셋은 바르고 어진 이를 헐고 시기함이요, 넷은 삿된 무리와 당을 짓고 삿된 무리에게 힘을 도와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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