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대신 건강한 음식과 운동 권해요"

의약분업 전, 따뜻한 정·동네 사랑방 약국

처방전 조제로 단순해진 약사 역할 아쉬워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명문약국 김성희 약사(65·법명 원전). 그를 만난 김에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안 좋다고 했더니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고 쉬어주라고 한다. 약사가 약을 팔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가능한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면역력을 길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야채·과일·버섯류 등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한 군데 허술한 곳 없이 간결하게 정돈된 약국처럼 환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깔끔하다. 증세를 확인하고 환자의 요구를 접수한 후, 환자가 더 필요한 항목을 고민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그는 공손하게 기다리며 재촉하지 않는다. 사실 환자가 증상을 설명하며 약을 달라고 하는 일반약 판매는 10% 정도에 불과하고 90%는 병원에서 발급하는 처방전 조제다. 2000년 7월부터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약국에는 많은 변화가 왔다.

"의약분업 전에는 약국이 동네 사랑방이었어요. 꼭 완치해줘야겠다는 의욕과 책임이 따르던 시대였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위해 환자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이 오갔고 다양한 약에 대한 공부로 약사의 실력도 발휘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재는 처방전대로 조제만 하면 되는 단순 노동직에 불과한 셈이죠."

그는 약대를 졸업하고 의약분업 전까지 20년 동안 서성로교당 건너편에서 약국을 했고 의약분업 이후는 현재까지 17년째 다른 약사 한 명과 동업 중이다.

"반대로 의약분업 전에는 쉬는 날도 없고 밤 12시에 문을 닫는 등 매우 힘들어 언제 그만두나 늘 고민이었어요. 의약분업 이후 문 닫는 시간도 빨라졌지만 무엇보다 친구와 동업하니 일주일에 반만 근무하고 나머지는 쉽니다. 수입은 반으로 감소해도 생활의 질이 좋아지고 은퇴 고민도 없어 다른 약사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그의 약국은 MS재건병원(정형외과)을 마주하고 있어 대부분 병원 처방전 조제다. 근처에 대구교육대학과 초·중·고가 밀집돼 있다 보니 나머지 10%는 학생들 고객이 주를 이룬다.

"정형외과라서 조제가 쉬워 소아과 등과 비교하면 일이 훨씬 수월합니다. 소아과 조제는 까다로워 젊은 약사들 아니면 어려워요. 약의 종류도 많고 분말로 갈아야 하고, 시럽은 큰 병에서 작은 용기로 용량 맞춰서 옮겨 담는 등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시력도 좋아야 합니다. 약을 갈 때 분진도 많아 공기도 안 좋고요."

의료수가 체계는 약값은 원가이고 조제료만 받는 구조인데, 조제료는 날짜별로 계산하기 때문에 약의 개수가 많아도 비용은 동일하다. 그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품명' 처방에 대한 불합리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성분명' 처방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발급한 처방전에 적힌 성분에 따라 약품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오리지널 약과 상대적으로 싼 복제 약 중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으로, 영국·독일·프랑스·미국 등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다. 보다 저렴한 약제 선택이 가능해 환자의 약값 부담이 줄고 특정 의약품을 구비하지 않은 약국에서도 조제가 가능해 환자 편의가 개선될 것이란 논리다.

"대체조제라는 방법이 있어요. 만약 의사가 타이레놀을 처방했는데 약국에 없다면 타이레놀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있는 다른 브랜드의 약을 대신 줄 수도 있는 것이죠. 단, 대체조제의 경우에는 환자의 동의를 받고, 또 그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통보해야 합니다. 생동성시험에 합격한 목록으로만 조제하기 때문에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Bioquivalence Test)이란 오리지널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제네릭의약품(복제 약)의 약효가 같은지 입증하는 시험이다.

명문약국을 동업하는 그는 월요일만 두 사람 모두 출근하고 나머지 요일은 나눠 맡는다. "대부분의 병원이 월요일에 가장 붐벼 환자수가 많습니다. 법적으로 한 약사가 조제할 수 있는 분량이 하루에 75건으로 정해져 있어요. 초과하는 경우에는 조제료를 삭감 당하기 때문에 약사를 한 명 더 고용할지는 경제적인 득실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는 처방 내용이 기록돼 있는 약봉투를 버리지 말고 잘 활용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아픈 곳이 많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보면 약봉투가 두툼해지고 오히려 위를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약봉투를 보여주고 중복되는 문제는 없는지 약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대 졸업 후 바로 시작한 약국이 마침 서성로교당 근처에 있어 원불교 교도 고객이 많아 입교하게 됐다는 그는 새벽기도 때문에 교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서성로교당 교도부회장인 그는 얼마 전 교당부지 마련을 위한 천일기도가 시작됐다며 전교도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새벽기도 35년이 넘으면서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기도가 힘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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