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덕 사무국장/경남대 석좌교수,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장
슬로푸드운동은 소규모 생산으로 많은 정성 들여 질적 향상

성장호르몬이나 항생제 사용하지 않는 자연 리듬 그대로



슬로푸드운동은 현재 지구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속가능성 위기, 다양성 위기에 대응하여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 운동이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1986년에 이탈리아에 진출하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 그의 동료들이 음식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맛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모임이 슬로푸드운동의 시작이었다.

소규모 가족농, 지역음식, 안티 유전자조작

슬로푸드운동은 1989년에 파리에서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국제적인 운동이 되었다. 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는 국제 슬로푸드협회는 이탈리아 피에드몬트주 브라(Bra)에 위치하며, 2016년 기준 회원은 160개 국가에 100,000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이탈리아가 40,000명으로 가장 많다. 최근 들어서는 패스트푸드의 종주국 미국의 회원 증가가 괄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부터 슬로푸드운동이 소개되고, 2007년부터 전개되어 2017년 기준 국제회원이 800명을 넘어섰다.

슬로푸드운동은 산업형농업에 의한 먹을거리 생산에 반대한다. 먹거리 생산에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등장한 산업형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데 저비용을 위해 화학비료나 농약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영농방식이 농약잔류로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침해하고, 농지의 산성화와 사막화를 가져오며, 가족농을 줄어들게 한다. 산업형 농업은 농업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영농을 지속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슬로푸드운동은 소규모 가족농이 생산하는 먹을거리를 중시한다. 보다 많은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지으며 지속가능한 영농을 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식재를 생산한다. 소규모 가족농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성장호르몬이나 화학제 등을 사용하기 않기 때문에 식품안전 그리고 영양 면에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슬로푸드운동은 음식은 지역음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패스트푸드가 세계화되는 가운데 지역 음식과 음식문화가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역음식과 음식문화를 지키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지역음식과 음식문화에 주목하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데, 슬로푸드 맛의 방주 프로젝트는 그 일환이다.

슬로푸드운동은 유전자 조작 종자에 의한 농산물 생산에 반대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그것을 옹호하는 농기업이나 연구자들의 주장과 달리 먹을거리로서 많은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식품안전은 물론 생물학적 오염, 슈퍼 잡초의 출현 등 환경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조리는 슬로푸드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지미교실을 통해 지역 먹거리를 활용한 전통 계절음식을 연구하고 확산시킨다.
밥과 김치, 전통음식이 곧 대표 슬로푸드

슬로푸드국제협회 회장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의 기준으로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정의로운(fair)" 음식을 제시하고 있다. 좋다는 것은 음식이 맛이 있고, 자연성을 갖추고 있고, 문화적으로 부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끗한 것은 먹거리의 생산과 수송이 지속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정의롭다는 것은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일한 사람들의 몫을 제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을 말한다. 정의로운 것의 외연을 넓히면 동물복지를 위반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세 기준을 고려할 때 슬로푸드는 다른 어느 음식보다도 온전한 먹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슬로푸드를 이렇게 본다면, 산업화, 세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세계의 곳곳에서,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 즉 전통음식이 대표적인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우선 우리의 주식인 밥이 슬로푸드다. 쌀로 밥을 짓는 과정은 조리기술과 시간, 기다림이 필요하다. 또 쌀에 따라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밥을 달리 지을 수 있다. 밥을 토대로 해서 또 다른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비빔밥, 볶음밥, 김밥, 술, 식혜, 엿의 바탕이 밥이다.

김치도 슬로푸드 자체다. 지역마다 많은 종류의 김치가 발전됐고, 배추김치, 무김치를 비롯해 재료에 따라 다양한 김치가 있다. 우리의 술도 슬로푸드다. 고들 밥에 누룩을 섞어 물을 붓고, 일정한 온도로 보온하여 발효가 이루어진 것이 막걸리고, 더 발효가 이루어져 용수를 이용하여 뜬 것이 청주이고, 청주를 증류하여 만든 것이 증류식 소주이다. 각 지역에서 발전된 그리고 각 집에서 담가먹던 각종 가양주도 모두 슬로푸드다. 우리의 선조들은 막걸리나 청주가 발효되어 쉬게 되면 그것을 이용해 슬로푸드인 식초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장류 식품인 간장, 고추장, 된장도 슬로푸드 그 자체다. 이밖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의 젓갈류도 훌륭한 발효음식이며, 탕류 음식도 음식을 만드는 데 장시간의 기다림과 기술이 필요한 슬로푸드다.

속도나 효율성 아닌 자연과 정성으로 생산

슬로푸드는 현대의 지배적인 먹거리보다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농민들이 슬로푸드를 생산하게 되면, 이전과는 달리 속도와 효율성에 전념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의 특성과 시간에 맞추어 농축산물을 재배하고 사육하기 때문에,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영농활동을 할 수 있다. 농민들은 자기 지역의 특성을 이용해, 오랫동안 발전되어온 영농문화나 지식을 따르면서 지역종자나 품종을 가지고 농사나 축산을 할 수 있다. 식품산업이나 농기업에 종속돼 판매를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품질의 지역 먹거리 생산에 전념함으로써 농민들은 영농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다.

슬로푸드는 여러 측면에서 건강에 이롭다. 슬로푸드는 자연의 리듬에 따라 생산된 음식재료로 만든 것이다. 사철과일이 아니라 제철과일을 지칭하며, 성장호르몬이나 항생제 등을 사용하지 않은 음식재료로 만든 것이다. 사람의 몸이 유기체이기 때문에 패스트푸드보다는 자연의 리듬에 따라 생산된 재료로 만든 슬로푸드가 더 잘 맞고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슬로푸드는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와 달리 발효식품이 대부분이다. 발효식품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슬로푸드는 느린 식사를 중시한다. 느린 식사는 소화를 돕고, 음식에 있는 영양분이 몸속에 잘 흡수되도록 함으로써 건강에 보탬이 된다. 느린 식사는 식재의 원천을 생각하게 하고, 음식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게한다.
▲ 서울도시농업박람회 슬로푸드체험에 참여한 시민들이 전통 먹을거리인 무말랭이와 시래기를 엮어보고 있다.
생활속 슬로푸드 실천, 조리와 공동생산자

슬로푸드운동이 제안하는 슬로푸드는 그것을 생산하는 농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에게 이롭다. 또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생산함으로써 생태계와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이처럼 순기능을 하는 슬로푸드도 사람들이 먹지 않으면 농민들이 계속해서 생산할 수 없다.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고, 또 그것을 섭취해야 하는 이유다. 슬로푸드의 확산을 위해서는 슬로푸드운동에 동참도 필요하다.

슬로푸드운동에서는 슬로푸드의 확산을 위해 먹거리 소비자가 공동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동생산자가 되는데 조리가 중요하다고 본다. 조리에 대한 관심은 식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업과 농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리하고, 공동생산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슬로푸드운동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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