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8년 6월1일 열반하여 6일간 장례를 치렀다. 당시 불단 꽃꽂이 모습이다.
▲ 김원진 회장/원불교꽃예술인협회
꽃꽂이 단체 결성은 여러 차례의 예비모임을 통해서 이뤄졌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힘들지만 그래도 교당 교무님과 아는 교도들을 연락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기94년 8월25일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원불교꽃예술인회 출범식을 가졌다. '꽃예술을 통해 일원의 꽃향기를 세상에 전하다'는 비전을 수립했고, 가락교당 이성순 교도의 후원으로 기념식수(소나무)를 향적당 앞에 식재했다.

출범식을 계기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로비에서 제1회 꽃예술인 전시회를 개최했고, 정보 나눔과 교류를 위해 원불교꽃예술협회 인터넷 카페도 개설했다. 교단 내 꽃예술은 그동안 전문가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 왔었다. 교단적 행사는 물론 교당, 리셉션, 소모임 등 크고 작은 일에 꽃예술인들이 소리없이 가위를 들곤했다. 이미 꽃예술이 태동해 활동했지만 조직화된 것은 출범식 이후다.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하여 꽃, 향, 등, 차, 과일, 음식(쌀)등을 부처님께 공양하여 왔는데 원불교가 불교를 연원하고 있어서, 꽃 의식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꽃예술은 교단 개교와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초기 교단사 사진자료들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후 49재 분향소의 꽃장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준다. 가화(종이꽃, 가공화)와 생화, 그리고 분화류가 불단 위에 사용됐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처럼 생화시장이 원만하지 않았고, 절화용으로 재배되는 일이 적었으므로 생화사용이 제한적임을 알 수 있고, 가화의 사용량이 많았던 시기였다.

원기76년 소태산대종사탄생백주년기념대회는 꽃예술의 경연장이었다. 교단 성업을 위해 전국의 재가출가 꽃예술인들이 두 손을 거든 것이다. 당시 대종사성탑은 물론 대각전, 영모전, 반백년기념관, 종법원 등 꽃 장엄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꽃예술은 자연 그 자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순한 화훼 장식 아닌, 헌화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내야 한다.

원기79년 11월 좌산 이광정 종법사 대사식이 영모전 광장에서 거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외행사이다 보니 꽃예술인들이 새벽부터 모여 다양한 색채와 디자인을 구상했다. 불단 끝을 국화로 장식한 점은 특이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원기82년 IMF를 당해 평소 꽃을 가까이 하던 회원들이 꽃을 함부로 다룰 수 없게 됐다. 그런 이유로 꽃예술을 그만두거나 쉬는 회원들이 속출했다. 그만큼 나라 경제는 물론 가정 경제도 어려웠던 것이다. 교당의 경우 불단에 꽂을 꽃만 사용할 뿐 꽃예술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츰 경제가 살아나면서 꽃예술인들도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 사이 교단의 크고 작은 행사들도 늘어났다. 어쩌면 꽃예술인들은 신심, 공심, 공부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기도 한다.

원기83년 대산종법사 열반식, 원기92년 경산종법사 대사식, 원기97년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제10차 도덕발양대회(주관 청운회), 원기99년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대법회, 원기101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도 전국의 꽃예술인들의 정성과 헌신으로 꽃장엄을 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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