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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수첩. 세상을 대하는 방향 알려준 두 아이
교사수첩. 세상을 대하는 방향 알려준 두 아이
  • 이경섭 원장
  • 승인 2017.05.05
  • 호수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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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섭 원장/신림원광어린이집
▲ 이경섭 원장/신림원광어린이집

몇해 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두 아이 이야기다. 어린이집은 입소순위의 원칙으로 아이를 받는데 두 아이 모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어 입소하게 됐다.

4살인 남자아이는 아주 잘생기고 활동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폭력적이어서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교구장에 올라가거나 친구를 때리는 등 아찔한 순간들이 펼쳐졌다. 특히 교사가 제지를 한다고 팔을 붙잡기라도 하면 아주 오버하며 일부러 뒤로 넘어지는데 우리는 그 모습을 오노 액션(당시 스케이트 시합에서 헐리우드액션을 펼친 선수를 빗댄 말)이라 불렀다. 모든 것은 내가 할 거라고 우기고 소리 지르는 이 아이를 다른 아이들은 제지할 수도 이길 수도 없었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아이는 결국 따로 보조교사가 맡게 됐다.

다음 해에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학부모의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 교사들의 한숨소리가 땅에 꺼지는 듯했다. 아이 역시 매우 특별해 보였는데 덩치 또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컸다. 5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이 아이의 발음에서 우리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느낌을 받았지만 부모는 아이가 발달이 늦어서 그렇다며 다름을 완강히 거부했다. 5살이 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한 교실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전쟁은 낮잠시간부터였다. 낮잠을 자지 않으려는 여자아이의 괴성이 온 건물을 울렸다. 유난히 큰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에 눈물범벅이 돼 엄마를 찾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같이 울고 싶을 정도였다. 어느 틈엔가 교실을 빠져나온 남자아이는 교사와 실랑이를 하며 화장실에 숨어들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깜짝 놀라 아이를 불렀지만 아무리 불러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교사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것이다. 잠시 후 교사 화장실 문 꼭대기에 매달려 웃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며 나는 뒤로 넘어질 정도로 놀랐다. 변기 위에 올라가 화장지 걸이를 밟고 문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간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이 상황에 대해 남자아이를 혼내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여자아이가 달려와 남자아이를 꼭 안아주며 내 친구 혼내지 말라고 교사를 말린다. 그런 친구의 사랑을 받은 남자아이는 행복해하며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하게 됐다.

학부모 상담에서 만난 두 아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냥 아이였다. 모든 생각이 부모 위주인 남자아이의 부모는 유난히 영리한 이 아이를 잘 교육시키면 공부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 하는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은 불행했고 결국 부모는 이혼했다. 남자아이는 영리하고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컸으며 또한 이해력도 좋았다. 그러나 인성교육의 부재로 타인과 어울릴 수 없었으며 결국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문제가 돼 논의를 거쳐 시간을 정해 친구와 함께 어울리는 제제를 받게 되었다 한다.

여자아이의 부모는 달랐다. 그렇게 말과 행동이 거칠게 보였던 부모는 선생님들 앞에서는 어색한 예의를 갖추고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부모는 모든 생각을 아이 위주로 했다. 나는 여자아이의 장단점을 알려주고 장애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이대로 가다가 닥쳐올 아이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함께해 보았다. 여자아이 부모는 결국 마음을 바꾸고 장애검사를 받았으며 지금 여자아이는 장애전담이 있는 어린이집에서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다. 가끔 어린이집에 찾아와서 선생님들이 보고 싶어 왔다고 쑥스럽게 웃는 부모들을 볼 때 마음이 뭉클해진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할 줄 알며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두 아이들은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대할 때, 사람을 대할 때, 세상을 대할 때 가야할 방향을 알려준 귀한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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