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 김연성 정사 열반
이리보화당·원대병원 발전 공헌

정법에 대한 서원을 올곧게 간직하며 일생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늘 공부하고 연마했던 자애로운 공부인 갈산 김연성(葛山 金淵聖) 정사가 4일 열반에 들었다.

갈산 정사는 원기44년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수계농원, 총부, 이리보육원에서 간사근무를 하며 원광대학교에서 수학 후 원기51년 서원승인 받았다. 원기51년 이리보화당 임원을 거쳐, 원기63년 원광대학교로 발령받아 원기84년 퇴직 시까지 치과병원 행정부장, 이리한방병원 행정부장, 신경정신병원 행정팀장, 사무처 제제팀장 등의 보직을 두루 수행하며 봉직했다.

갈산 정사는 간난했던 교단 초창기에 전국을 걷고 또 걸으며 약재를 팔아 이리보화당을 크게 발전시키는 데 높은 공헌을 했다. 또 자애롭고 근면성실하신 성품으로 어려운 가운데 스스로 공부했고, 주변인을 넉넉한 마음으로 챙기며, 마음공부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초기 원광대학교병원의 행정 체계를 바로잡는 데 기여해 오늘날 원광대학병원을 전국 최고의 사립학교 병원으로 발전시킨 공덕주다.

열반소식을 접한 경산종법사는 "일생을 수계농원, 이리보육원, 이리보화당, 원광대학병원에서 봉직하며 오직 대종사님 교법정신에 바탕해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추진력으로 공사에 임하셨고 '일속에서 공부하자'는 표준으로 스스로를 경책하며 그 일 그 일 일심공부에 주력한 속 깊은 공부인이었다"고 회상했다.

경산종법사는 "갈산 정사는 누구보다도 숨은 도인이요, 교화자였으며, 공도자로 헌신했다. 이 모든 일을 법신불 사은이 다 통촉하실 것이요, 삼세 제불제성이 알고 계셔서 세세생생에 은혜와 광명이 함께할 것이다"고 심축했다.

김상화 교무는 "한번 출장을 떠나면 10여 일씩 집을 비워야 하는 이리보화당에 근무를 하면서도 자녀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자애로운 아버지였다"며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자녀들을 큰 책상에 둘러앉히고 소리내어 책을 읽게 하며 공부를 살펴주던 그 정성은 네 자녀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무는 "갈산 정사님은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공부에 먼저 힘을 써라. 참을 인자 세 번으로 안 되겠거든 3백 번을 해서라도 상대방을 인자함으로 대하라' 한 말씀은 지금도 보감으로 기억되고 있다"며 슬픈 마음을 전했다.

그의 세수는 83세, 법랍은 58년,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3호, 원성적 준특등으로 교당연합장으로 장례의식이 진행됐다. 종재식은 6월21일 오전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