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인 교도

우리 반 아이를 품지 못한다

2학년 담임(고등학교)을 한 지 벌써 2달이 다 돼 간다. 우리 반에는 1학년 때부터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을 힘들게 해서 꼬리표를 달고 온 아이가 있다. 엄마가 없는 그 아이는 아버지가 다른 지방에서 일하고 있어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그래서인지 문제 행동을 아주 많이 한다. 1학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힘들 거라는 이야기,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엄마처럼 품어주리라 마음을 먹고 3월을 시작했다.

3월에 만나보니 역시나 문제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예뻐해 주고 감싸줬다.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은 우리반에서 그 아이를 제일 예뻐한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 갑자기 침을 뱉거나, 가만히 있는 애를 때리고,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한마디로 제 멋대로 했다.

얼마 전부터 이 아이가 학교 밖에서 상급생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서 은근히 뺐고, 심지어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친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엄청 실망이 커진다. 엄마처럼 품어주겠다는 3월초의 결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똑같이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해서 시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가끔씩 아이가 싫어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결핍이 너무 많은 아이다.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지금 4살짜리 내 아이를 생각하면 그 맘 때쯤의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란 세상 전부일텐데 그 세상이 이 아이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측은하다. 그런데 하는 행동을 보면 어쩜 이렇게 못된 행동만 골라서 하나 싶으니 실망이 엄청 커졌다.

그러면서도 품어내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한다. 학부모상담시간에 "선생님,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내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럽고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마음공부를 통해 내가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의 문제 행동이 잦아지면 또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이 정도 경계에 무너지는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문답감정 : 두 달 동안 반 아이들 모두에게 또 특별한 아이에게 신경 쓰고 지도한다고 애 많이 썼습니다. 특별하게 담임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라 더 관심주고 사랑을 베풀었으니 당연히 그 아이에게는 사랑이 엄청 갔을 거고 분명히 그만큼 잘 했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것처럼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듬뿍 더 사랑을 주면 되고 아이의 행동이 뭔가 시비가 되고 마음에 안 들면 아, 지금 내가 시비하고 있구나,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있구나 하고 품어지지 않고 튕겨나가려고 하는 괴로운 내 마음을 품어주는 공부를 하면 됩니다.

지금 이 일기는 나를 품어주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다만 품어질 때나, 미워져서 거리를 둘 때에도 일어나는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품어주는 것도 나를 품어주는 것도 그 때 그 때 경계 따라 달라집니다. 영원히 내가 품어줄 일도 영원히 내가 나에게 실망할 일도 아닙니다.

모든 경계는 지금이고 처음이고 시작일 뿐입니다. 품어지지 않는 내 마음을 지금 그대로 신앙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품어지는 것과 품어지지 않는 두 마음이 온전히 다 내 마음 밭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므로 어느 하나도 내칠 수가 없습니다. 일 년 동안 수없이 품어지면서 기쁘고 뿌듯하기도 할 것이고 품어지지 않는 내 그릇을 탓하면서 실망도 하는 내 공부를 하다보면 나도 그 아이도 훌쩍 커져 있을 것입니다. 경계 따라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보고 멈추고 원래자리에 대조하는 공부. 그 일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일기기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교사입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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