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우 교무/교육부

 예비교역자, 진로와 삶의 방향 선택할 수 있어야
교육개혁은 전무출신제도 검토 선행돼야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교육이 잘 되면 세상을 진보시키고 교육이 잘 이뤄지는 사회나 단체는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교육이 잘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와 단체는 퇴보하게 된다. 이미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이러한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 교육환경과 정책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미래시대는 갈수록 창의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창의력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나오고, 이러한 집중력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할 때 나온다. 즉 미래세대는 삶이 곧 놀이이면서 노동이자 창조가 되는 시대로 이러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넘어 깊이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비교역자들을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교역자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는 일반적인 교육과는 달리 교역자 교육은 먼저 '출가'라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그 질이 훨씬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종교에서 교역자를 육성한다는 것은 수도인과 교화자의 자질을 동시에 갖추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물론 수도인과 교화자는 상보적 관계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행위적 나타남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각각 개인의 타고난 역량과 관심분야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역량과 관심에 따라 개인의 수도에 정열을 기울이다보면 교화대상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교화대상에 더 많은 정열을 쏟을 때 수도자적 모습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교단운영의 체제에서 교무는 수도자일까, 관리자일까, 교화자일까, 지도자일까, 교무는 물론 이러한 역할을 함께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과 현실은 언제나 틈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가 모두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도 없지 않다.

지금까지 원불교 교무는 수도자, 관리자, 교화자, 지도자의 역할을 다 잘 할 수 있도록 예비교역자들을 지도하고 교육해 왔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세상 흐름따라 종교적 역할의 범위도 변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은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는 기존에 강조돼왔던 교무관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교단에서 교무를 어떻게 운용하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즉 교무관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예비교무의 교육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교화 현장은 교화직, 전문직, 봉공직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기 때문에 예비교역자 시절부터 자신의 진로와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데 인재양성의 초점을 맞춰 교육이 이뤄졌으면 한다.

동기 교무의 말이 귀 언저리에서 맴돈다. '어디서든 살아낼' 전무출신이 아니라 '어디서든 잘해낼' 전무출신들을 육성해 달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행 육영제도를 비롯한 교단의 여러 제도에 대한 재검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거의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비교무 교육개혁이 교단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면 먼저 전무출신 제도에 관한 문제부터 재검토할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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