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옆집 동생을 따라 교회를 가본 기억이 있다. 옆집 아이는 줄곧 나에게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상상했던 지옥은 큰 구덩이 속에 불길이 치솟고, 악마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사람들을 끄집어 내려서 불구덩이 속으로 빠뜨리는 형상이었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교회를 따라 다녔지만, 곧 어머니가 그 일을 알게 돼 이후엔 교회를 가보지 못했다.

출가를 하면서 교전을 보았고 현실지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이요, 죄복과 고락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자리가 곧 지옥이니라."(〈대종경〉 변의품 10장) 지옥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사는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교구 여성회 교도님들과 함께 교도소 법회를 보러 광주교도소에 다녀왔다. TV에서만 보던 교도소의 모습과는 달리 외관은 그냥 평범한 공공기관 같았다. 그러나 막상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통제가 시작됐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으며 긴장감이 생겼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 편을 보면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철저한 감시와 이동의 자유가 없는 이곳은 마치 희망 없는 지옥 같았다. 그렇게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120여 명의 수감자들이 모인 강당에 들어선 순간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반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제일 앞에서 법회 의식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모범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그는 선한 인상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법회가 다 끝나고 안 사실이지만, 그는 무기수였다. 처음에는 눈빛에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불교를 알고 법회를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희망이 존재한 걸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니, 살·도·음(殺盜淫)을 행한 악인이라도 마음만 한 번 돌리면 불보살이 될 수도 있지마는,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능력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에게 큰 희망을 열어 주실 원력(願力)을 세우시고, 세세생생 끊임없이 노력하시나니라."(〈대종경〉 요훈품 12장)

그에게 원불교는 아마도 희망으로 다가온 종교였고, 인과를 깨달으며 희망을 찾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봤고,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찌되었든 극락과 지옥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지옥을 벗어나 극락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나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불보살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제나 극락생활이 될 것이다. 그의 미소처럼 모두에게도 희망의 미소가 영원히 머물기를 소망한다.

/광주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