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교당 교도들이 석존성탄절을 앞두고 교당에 함께 모여 연꽃등 만들기에 힘을 모았다.
▲ 소예리 교무 / 미주동부교구 뉴저지교당
원기96년 1월 말에 뉴욕 뉴저지 지역은 폭설이 내렸다. 이날 나는 뉴욕교당에서 인수인계를 마치고 이불 등 몇 가지를 챙겨 길을 나섰다. 아직 교당이 마련되지 않아 뉴저지 남쪽에 있는 교도의 농장집이 비어있어 당분간 그곳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뉴욕교당 업무를 마무리하고 농장집에 도착하니 밤중이었다. 농장 입구까지 오는 도로에는 제설작업이 되어 있어 괜찮았으나 농장은 길 안쪽으로 깊이 자리하고 있어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도님의 배려로 1차 눈을 치웠음에도 우리 차는 진입로 중간에 서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함께한 세 명의 교무가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눈길을 헤치며 짐을 옮겼다. 하지만 비어있는 집에 난방시설이 없어 여간 추운 것이 아니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가지고 간 온열기를 틀었는데도 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연기에 눈도 맵고 코도 매워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함께한 교무들은 서로를 보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농장에서의 임시교당생활. 차차 날이 풀려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오리 떼들이 날아드는 진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에서만 지내다가 오래간만의 전원생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신선했다.

그날도 수많은 오리 떼들이 날아들어 밭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지내시던 정연석 교무님이 말했다. "야! 오리들은 아무 데나 알을 낳는다는데 어디 한번 가보자." 춥기도 하고 게으른 마음에 "그렇다 하더라도 설마 이 겨울에 알을 낳겠어요?"라고 했지만 내심 눈밭에 뭐 먹을 것이 있나 궁금하여 함께 밭으로 나가보았다. 카트 엔진소리가 가까워지자 뭔가를 열심히 쪼고 있던 오리들이 푸드득 거리며 순식간에 하늘로 날기 시작했다. 워이워이 소리를 지를 것도 없이 엔진소리 하나로도 충분히 그들을 다른 밭으로 물리칠 수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살펴보았다. 무수히 많은 부산물들이 쌓여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파란 생명들이 그 속에 있었다. 그 정체는 봄동과 냉이였다. 그들이 그동안 먹어치운 것이 봄동과 냉이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 오리 떼는 낭만이 아닌 적군이었다. 수시로 카트를 타고 가서 오리를 쫓으며 냉이와 봄동을 사수했다. 마침내 날이 풀리고 언 땅이 녹을 즈음 칼과 바구니 하나를 챙겨 밭으로 나갔다. 파랗게 빨갛게 노랗게 올라오는 풀들과 새순들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냉이들이 있었고 성장 속도도 눈부시게 빨라졌다. 나는 냉이를 한 바구니 캐고 올라오는 달래를 캐어 달래장도 만들고 냉이국도 끓였다.

그렇게 발견된 냉이와 봄동은 그 봄 동안 우리의 동반자이자 교도이자 감사의 선물이었다. 교당 구입과 관련하거나 회의에 참석할 일이 있어 뉴욕이나 뉴저지 북부 지역으로 출장가지 않는 한 날만 좋으면 냉이와 봄동을 캤다. 우리가 거주했던 농장은 일요일 말고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열심히 캔 냉이와 봄동은 일요일 법회에 국으로 나물로 쌈으로 변신시켜 공양도 하고, 인연된 곳에 판매도 하고 여기저기 선물로 나눴다. 그로 인해 인연된 두 분이 입교도 했고 압력솥 하나 사자고 가볍게 시작한 일이 삼천불 가까운 수입의 결과를 가져왔다.

냉이와 봄동은 뉴저지교당 교화시작에 지대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도들과 함께 '냉이도 도와주는 교당'이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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