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천곤 교도/북통영교당
주관적·자의적 사정 비판받는 현실

법위 사정의 본래 목적 살려 공부 표준삼도록



금년은 법위사정의 해다. 입교 후 교무님이 "이생에 입교한 이상 항마는 하고 가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항마가 무슨 의미인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목표는 '항마위'라며 떠들고 다니던 시절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법위사정에 대한 대종사님 당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교도들의 일기나 문답이나 강연 등 11개 과목에 대하여 갑을병정으로 평가를 해주셨고 그러한 평가를 종합하여 법위 사정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병으로 죽음 직전에 이른 제자가 견성 인가를 받고자 찾아갔지만 대종사님께서는 끝내 인가하지 않으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자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애석해하시면서도 내생에는 더욱 진급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정과 연민에 끌리지 않으신 취사로 법을 세우신 대종사님의 철저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법위를 사정하는 목적은 공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부 정도를 가늠케 하여 그에 따른 적절한 공부와 수준에 맞는 수행을 함으로써 보다 쉽게 성불의 길로 나아가게 함이라 생각된다.

돌이켜보면 개교 이후로 백년이 흐른 이 시점에서 법위사정은 더욱 발전, 개선돼 모두에게 도움 되고 수행의 지표가 돼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위사정으로 인한 불만과 성찰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일에 바른 평가를 하려면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요건과 그 요건들을 집약할 수 있는 축적된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객관적인 자료는 전무한 상태에서 교무님의 경험에 의한 자의적 판단으로 법위사정이 이루어지고 추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연유로 때로는 교도들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성적에 못 미치는 교도까지 같이 승급시키는 경우도 있고, 연조가 오래된 교도들에게는 예우 차원의 사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교도의 실제적인 수행능력보다 교무님의 역량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교단적으로 보면 삼학의 항목을 세분화시켜 훈련과 점검을 병행하게 하고, 이러한 정보들을 교도 개개인의 자료로 축적해 법위사정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러다보니 교도들도 11개 훈련과목을 전부 공부하기보다 일부분에 치우친 공부를 하기가 쉽다. 또한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당은 교무님의 설교에 중점을 둔 법회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질적인 훈련을 위해 교도들에게 일기나 강연 발표 등을 시키려 하면 대부분 고개를 젓거나 교당에 다니지 못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웃지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교단에서 법호나 법위를 받으면 교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닮아가고 싶은 표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근거에 의한 바른 사정과 삼학을 병진하는 철저한 수행이 따르지 못한 관계로 간혹 문제를 일으켜 도리어 법위와 법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모자라면 채우라며 법위와 법사를 배출해왔지만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점검하고 훈련시키는 체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법호와 법위가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공부인들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고르게 실천하고 바른 평가가 될 수 있도록 정기훈련 11과목에 대한 올바른 교화 방법과 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교당에서는 어느 수준의 법위만 사정토록 하고 그 이상의 법위에 대해서는 예비로 승급시켜 총부나 훈련기관에서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바른 평가기준에 바탕한 훈련과 평가를 병행하여 정식으로 법위사정을 해 나가는 것도 바른 법위사정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법위사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교도들의 공부 방향도 달라져 삼학을 고루 수행해가는 바른 공부 풍토가 조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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