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얼마 전 성주성지에서 뵈었던 수도원 원로교무가 신문에 실린 나의 글을 보고 반가웠다며 건강 잘 챙기라는 격려의 문자를 보내준 것이다. 잠시 스친 인연이라도 놓치지 않고 챙겨주는 문자에 기분이 좋고 흐뭇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에게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한 선배교무의 충고와 조언의 문자였다. 심장이 떨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며칠 전 들떠있던 좋은 마음은 사라지고 한없이 우울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교무를 했나 자괴감에 빠졌다. 나를 자책해보았다가 상대를 원망해보았다가 며칠을 이 문자 한 통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았다.

칭찬에 웃고 충고에 우는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 공부의 기회가 왔다. 천천히 내 마음을 살펴서 해결해 보자" 죄복의 고락이 나에게 있을진대 여전히 타인에 의해 나의 고락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보고 나의 공부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할 때에는 혹 남의 찬성도 받고 또는 비난도 받게 되나니, 거기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한갓 좋아만 하거나 싫어만 하는 것은 곧 어린아이와 같은 일이니라. 남들이 무엇이라고 할 때에는 나는 나의 실지를 조사하여 양심에 부끄러울 바가 없는 일이면 비록 천만 사람이 비난을 하더라도 백절불굴의 용력으로 꾸준히 진행할 것이요, 남이 아무리 찬성을 하더라도 양심상 하지 못할 일이면 헌신같이 버리기를 주저하지 말 것이니, 이것이 곧 자력 있는 공부인이 하는 일이니라."(〈대종경〉 인도품 37장)

세상을 살면서 시비를 벗어날 순 없다. 어떠한 일을 하든 시비는 존재하기에 그것을 바르게 판단하고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힘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격려와 칭찬의 문자에만 기댄다면 독단적으로 자만에 빠져 타인을 수용하는 힘 없이 도태되어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충고와 조언의 문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하락시키고, 모든 원인을 상대의 탓으로 돌려 원망만을 일삼는다면 이 또한 공부를 방해하고 강급하는 큰 마장이 될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종경〉 수행품 47장에 다음과 같은 해답을 줬다. "(중략) 누구든지 정당한 비판과 충고는 그대들의 전도에 보감이 되는 것이어늘, 그 전도를 열어 주는 은인에게 혹 원망을 가진다면 또한 배은자가 되지 아니하겠는가. 그런즉, 그대들은 내가 그대들에게 잘한다 잘못한다 하는 데에나 세상이 잘한다 잘못한다 하는 데에나 다 같이 감사하는 동시에 공부의 참된 요령을 얻어 나가기에 더욱 힘쓸지어다."

시비, 그 가운데 감사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괴로운 내 마음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렇기에 더 전전긍긍하며 감정에 묶인 내 마음을 놓지 못하고 꽉 붙잡고 있었다. 자력이 부족한 나는 여전히 타력에 의지해서 누가 좀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밝혀준 해답을 보감삼아 이제는 어떠한 시비에 들더라도 먼저 감사하고 자력으로 공부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성숙한 내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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