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용어

한나라 때 적공(翟公)이 고을에서 형벌을 관장하는 정위(廷尉)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를 찾는 손님이 매일 넘쳐났는데,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문에 거미줄이 슬어 새를 잡는 그물이 될 정도였다. 적공이 다시 정위가 되니 또 손님들이 들끊어서 문에 방을 붙이기를, '한번 죽었다가 다시 한번 사니 그 때문에 교제하는 세상 인심을 알고, 한번 가난하다가 다시 한번 부자가 되니 그 때문에 교제하는 세태를 알고, 한번 귀하게 되었다가 다시 한번 천하게 되니 교제하는 인정이 거기에서 드러난다(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며 세상 인심의 경박함을 한탄했다.

세상 인심은 이해득실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경제적 속성은 비도덕성이 아니라 무도덕성'이라는 말처럼, 이해득실따라 움직이는 세상 인심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세정을 바탕해 인심을 살피는 것이 '보살핌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담긴 생각과 가깝다.

소태산은 "정당한 일이거든 내 일을 생각하여 남의 세정을 알아줄 것"이라 했고, 정산종사는 "모든 인심을 잘 파악하여 개인 개인의 세정을 잘 보살피는 것이 덕치의 교화"라 했다. 인심과 세정을 잘 살펴 어루만져 주는 것처럼 타인에게 크고 깊은 감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던 유가족 김소형씨를 따뜻하게 위로하며 안아주던 아버지같은 문재인 대통령 모습에 모두의 가슴이 뭉클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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