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범부와 중생은 근본 되는 마음을 모르고 산다

참마음은 허공처럼 변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佛言 - 熟自念身中四大하라. 名自有名이나 都爲無吾며 我者奇生이라 亦不久니 其事如幻耳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도를 닦는 이는 항상 자기 몸을 연구해 보라. 비록 부르는 이름은 있으나 그는 다만 이름뿐이요 실상이 없는 것이며, 육신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 네 가지의 합한 바라 또한 오래지 아니하여 흩어질 날이 있으리니 실상은 나라는 것이 없고 이 몸은 실로 물 위에 거품 같은 것이니라."

〈사십이장경〉 20장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몸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무엇인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만 껍질일 뿐 실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이 몸은 지수화풍의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일시적 존재로 물위에 뜬 거품 같고 실체가 없는 허깨비 같기 때문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몸은 사대(四大)로 구성되어 있다. 사대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일체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이다. 지(地)는 굳고 단단한 성질을 바탕으로 만물을 유지하고 지탱하며, 수(水)는 축축한 성질로 만물을 포용하고 모으는 작용을 하며, 화(火)는 따뜻함을 성질로 하여 만물을 성숙시키고, 풍(風)은 움직이는 것을 성질로 하여 만물을 생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합해지면 어떤 물질이 생겨나고, 흩어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육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육신은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가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만 있어지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거짓된 몸'이라고 하며, 육신이 명을 마칠 때에는 살아있는 동안에 정성을 들여 놓은 재산, 인연, 지위 등이 모두 뜬구름과 같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불조요경〉 중 하나인 〈수심결〉 1장에 "색신은 이 거짓이라 생함도 있고 멸함도 있거니와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변하지도 아니하나니라. 그런고로 '일백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되 한 물건은 길이 영령하여 하늘도 덮고 땅도 덮었다'하였나니라.(色身은 是假라 有生有滅커니와 眞心은 如空하야 不斷不變이니라 故로 云百骸는 潰散하야 歸火歸風호대 一物은 長靈하야 盖天盖地라하니라)"고 했다. 중생의 가장 큰 착각이 바로 사대의 인연으로 잠시동안 존재하는 자기의 몸을 참 나로 알고 보호하고 가꾸며 사는 것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오직 자신만은 예외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가 죽음이 침노하여 인연의 화합이 모두 끝나면 결국은 피하지 못하고 땅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흩어진다. 길이 영생하는 것은 형상이 없는 허공과 같이 변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참마음인 것이다.

둘째, 육신은 마음의 도구이다. 사실, 우리의 몸은 물건에 불과하다. 몸 속에 있는 마음의 의지에 의해서 몸이 움직인다. 마음이 걷고 싶은 생각을 하면 몸은 걷고, 마음이 택시를 타고 싶으면 몸이 택시를 타는 것처럼 몸은 마음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일 따름이다.

소태산 대종사도 말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신 후 제자에게 수레가 움직이지 않을 때 수레를 채찍질할 것이 아니라 말을 채찍질하는 것이 곧 근본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먼저 그 근본을 찾아서 근본을 다스려야 모든 일에 성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주종(主從)관계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근본에 힘쓰면 끝도 자연히 좋아지지만, 끝에만 힘을 쓰면 결국 근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 마음이 근본이라면 몸은 끝이다. 범부중생은 근본되는 마음을 돌볼 줄을 모르고 평생 자기 육신하나 돌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다.

셋째, 육신은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본이다. 육신은 정신이 깃드는 집이라고도 한다. 설사 육신이 정신에 의해서 움직이는 종속관계라 할지라도 육신은 우리가 현실에 살아갈 때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 몸을 '만사만리의 근본'이라 하시고, 신(信)을 바치는 뜻으로 손을 끊은 제자를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몸은 곧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지 못할 자본이어늘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하략)"(〈대종경〉 신성품 17장) 라고 말했다.

또한, 정산종사도 공부를 할 때에 육신을 돌보지 않고 너무 독공을 하여 몸을 상한다거나 또는 육신만 위하고 공부에 방종하는 사람은 다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데 아무리 높은 서원과 고귀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몸이 부실하다면 어떻게 수행을 하고 복을 지을 수 있을까? 원불교는 죽음 뒤에 있는 다음 생이나 극락, 천당을 최고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현생을 충실히 살면서 복과 지혜를 준비해야 영생의 서원인 성불제중을 향해서 진급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몸은 진급하고 복을 지을 수 있는 도구이므로 절대 함부로 여기지 말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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