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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여성10대 제자 4. 사타원 이원화 종사
원불교 여성10대 제자 4. 사타원 이원화 종사
  • 정성헌 기자
  • 승인 2017.05.26
  • 호수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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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의 여성 첫 제자, 바랭이네
소태산이 교단을 창시했던 1900년대 초는 남성성이 가치로 인정되는 시대였다. 여자는 자연히 억압과 규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소태산은 과거 시대와 미래 시대를 밤과 낮에 비유하며 다가올 양의 시대는 과거의 모든 불합리와 차별제도가 그 빛을 잃게 되며 도덕이 크게 드러난다고 했다.

소태산의 여성 첫 제자, 여자전무출신 1호 사타원 이원화 선진의 삶에 대해 지난 2월3일 발표자로 나선 원불교환경연대 이태은 교도는 소태산을 '페미니스트'라고 평했다. 모든 존재는 존엄하며,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진리관에 바탕한 소태산의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은 21세기 여성의 눈으로 보아도 가히 놀랍다"며 "원기16년에 발간된 <보경육대요령>에 나타난 남녀권리동일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면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소태산은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스트 소태산은 여성제자들을 '평등'이라는 기준으로 초기교단시절 거침없는 교화동력으로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 과연 페미니스트 소태산이 바라본 사타원 선진은 어떤 제자였을까. 사타원 선진은 어릴 적부터 이름 없이 사람들에게 '바랭이네'로 불렸다. 9세에 영광 김진사의 수양딸로 키워져, 17세 되던 해 장성사람 문재환과 결혼했지만 23살 되던 해 남편을 병사로 잃게 된다. 이후 대장간을 하는 박판동씨와 살며 둘째아이를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홀로된다.

당시 바랭이네의 상황에 대해 이 교도는 "애비가 다른 두 아이를 둔 과부 바랭이네는 망해가는 조선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말한다. 바랭이네에게 그나마 실낱같은 끄나풀이 되어준 것은 수양어머니의 오빠 김성서였다. 김성서는 소태산의 부친인 박성삼과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그는 "김성서가 친구 박성삼이 죽고 아들 처화(후일 소태산)가 마음을 잡지 못하자 덕성 있고 음식솜씨 좋은 질녀 바랭이네를 소개해 읍내 부자의 채무를 갚을 주막을 차리게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난데없이 차려진 주막은 길룡리 앞길을 오가는 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바랭이네는 음식솜씨도 좋고 후덕하여 손님들이 꽤 북적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주막에는 도무지 남는 게 없었다. 셈을 맡아야할 주인양반 박처화가 그때부터 귀영바위 굴에 들어가면 한나절도 좋고 시도 때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다 읍내 부자의 성화에 못 이겨 처화는 채무 청산을 위한 탈이파시를 떠난다.

그는 "이때 동승한 사람 중에 여자는 오직 바랭이네 뿐이었다"며 "바랭이네가 성자를 알아보기 시작한 때도 이쯤이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바랭이네 눈에 비친 성자의 면모는 어땠을까. 이에 그는 "뜻 모를 말이나 불쑥불쑥 내놓고 귀영바위 터에 자리 잡고 앉으면 돌부처가 되어버리는 남정네에게 쏟아질 것은 욕바가지에 원망투성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기록에도 바랭이네의 성난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한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처화가 '이 일을 어찌할꼬?'하며 고통스런 수행을 이어갈 때다. 그 고통스런 수행자의 곁을 지키는 것도 바랭이네 몫이었다. 이 시기에 대해 그는 "구도자의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기 위한 외로운 구도의 길을 묵묵히 지키며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바랭이네를 평가했다. 그리고 병진년 음력 3월 스무엿새 날, 바랭이네는 대종사의 대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빠르게 보았다. "그래서 소태산의 여성 첫 제자 바랭이는 결국 '성자의 첫 제자'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소태산은 "원화는 숙세의 선연이 심중할 뿐 아니라, 그 발원과 행실이 진급기에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이 회상의 발전에 따라 무량한 복록의 주인이 될 것이다"고 칭찬했다. 그는 "대종사가 아무런 바람 없이 공도에 헌신한 사타원 이원화에게 주는 스승의 가장 큰 상이었다"고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사타원 이원화 종사의 삶을 그리며 그는 "재가로 출가로, 동행자로, 조력자로 너른 생을 깊이 살았던 바랭이네가 21세기에도 수없이 나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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