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라, 우리 안에 현존해 있는 하느님과 만나리라"

▲ 향심기도는 고요한 공간에 앉아 일체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 안에 현존해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 공간 안에 머무름으로써 쉼이 되는 곳. 신록이 푸르른 5월, 사드저지 투쟁이 한창인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 발길 따라 들어선 평화계곡 피정의 집은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쉬게 한다. 정성스럽게 가꾼 화단과 갖가지 돌로 쌓아올린 성당, 고요한 토굴 기도실, 산길 따라 조각해 놓은 예수의 생애, 그 모든 것에 잠깐잠깐 마음이 머물다보면 어느덧 산 중턱에 올라 10여 미터 높이 서있는 예수성심상을 만난다. 전쟁 같은 세상을 벗어나 잠시 마주한 피안의 세계, 긴 숨이 쉬어진다.

하지만 다시 내려가야 하는 그곳. 문득, 올라오는 길에 본 글귀가 떠올랐다. 평화계곡을 창설한 남루도비꼬 신부의 삶을 새긴 석문이다. "모든 것에 사랑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순간에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미련 없이 길을 떠난다. 예수성심시녀회 평화계곡 피정의 집은 원래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었다. 2년 전, 이곳이 피정의 집으로 탈바꿈되면서  조에우제니아 수녀의 지도로 향심기도가 시작됐다.

수행의 갈증 속 향심기도 만나다

조에우제니아 수녀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톨릭 교회의 전통기도 수련법 '향심기도'로 평화계곡을 찾는 신자, 수도자, 일반인들에게 1일 혹은 1박2일 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향심기도는 묵상기도의 끝이면서 관상기도의 시작이다. 염경기도나 묵상기도에 익숙해 있는 신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복잡다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현존해 있는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향심기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토머스 키팅이란 신부가 한동안 묻혀 있던 가톨릭 전통기도 수련법을 재발견하여 시대에 맞게 보급시킨 수련법이다. 국내에 전파된 지는 30년쯤 된다. 수도자로 20년을 살았지만 자신 안에 현존해 있는 하느님을 확인할 길이 없어 갈증을 느끼던 차에 만난 이 향심기도는 조에우제니아 수녀의 삶을 바꿔 놓았다. 오랜 준비와 10년의 공들임을 통해 평화계곡을 향심기도 터로 일구고 있는 조에우제니아 수녀에게는 든든한 도반도 생겼다. 4년 전, 향심기도를 통해 만난 이루시아 수녀다. 특수유아교육을 전문해 장애아동시설을 운영하던 이루시아 수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지난해 말, 피정의 집으로 들어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루시아 수녀는 "활동하는 수도자로 살다 보니 수행에 대한 갈망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특수유아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하느님에게 바로 나아가지지 못하는 내 안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때 조에우제니아 수녀님을 만나 향심기도를 알게 됐다. 결국 하느님은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아시스에서 만난 시원한 물과 같았다"고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그의 이런 경험은 피정객들에게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1박2일 피정기간 동안 기도와 함께 향심기도의 방법에 대해 3~4차례 강의가 이뤄진다. 이때 이루시아 수녀는 일상에 찌들려 살았던, 잘해야 한다는 욕망에 앞뒤 돌아볼 새도 없이 살았던 현대인들의 실상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그렇게 포장된 거짓 자아를 내려놓고 내 안의 현존해 있는 하느님의 활동에 동의하게 하는 향심기도로 피정객들을 이끈다. 비록 1박2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긴 침묵 속에 자신을 내려놓고 하느님과 마주할 수 있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경험이라고들 한다.

▲ 조에우제니아 수녀와 이루시아 수녀는 향심기도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심심상련 도반이다.

고요한 골방에 앉다

향심기도가 국내에 보급된 배경은 토머스 키팅의 저서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라는 책이 번역되면서부터다. 토머스 키팅은 이 책에서 '향심기도는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신적 사랑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리고, 침묵으로 우리 안에 이미 현존해 있는 하느님 안에 쉬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침묵과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조용한 골방에 앉아 내적 대화의 문도 걷어 잠그고 숨어 기도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숨어 계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향심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주위 환경도 잘 갖춰야 한다. 20~30분 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혈액순환을 힘들게 하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지나친 소음과 예기치 않은 소음에 방해받지 않도록 조용한 장소를 택하는 것도 하나의 요건이다. 그런 면에서 산중에 자리한 평화계곡은 향심기도 수련의 최적지라 할 수 있다.

향심기도에 들어갈 때는 각자 '거룩한 단어'를 하나씩 정해 다른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거룩한 단어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머스 키팅은 전혀 애쓰지 말고 그것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기도의 열매는 일상에서

향심기도의 효과는 무의식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영적 성장과 함께 인간의 나약함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타인을 섬기는 습관을 길러나가야 한다. 이루시아 수녀는 "향심기도는 내가 기도의 주도권을 가지고 하느님에게 무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거짓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나의 공간을 비우고 하느님의 영역을 확장시켜 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확장되는 영적인 감각들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커지는 게 하는 거라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두 수녀는 내내 밝고 편안했다.

"기도가 숙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걱정 어린 말을 쏟아내는 조에우제니아 수녀. "기도 안에서는 만족을 다 느낄 수는 없다. 대신 오래 수련하다보면 내면의 치유가 일어나고, 일상생활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게 되고, 싸워야 하는데 그 벽이 허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빠질수록 하느님이 개입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결국 향심기도의 열매는 일상에서 맺어진 사랑이라며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 평화계곡 향심기도 피정을 온 참가객들을 위해 두 수녀가 '거룩한 단어'를 새긴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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