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불가(佛家)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염주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다. 염주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알을 무엇으로 했느냐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지기도 하고, 길이에 따라 종류가 나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108개 이상의 알로 만들어졌거나 목에 걸 수 있는 것은 이름 그대로 염주고, 팔찌처럼 손목에 차거나 30개 이하의 알로 만들어진 것은 단주(短珠)라고 부른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염주를 직접 산 적이 없다. 집에 있는 염주는 모두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108염주는 남원 실상사에서 108배를 하는데 절 숫자 세기가 힘들다며 툴툴거리자 종무소 간사가 준 것이다. 한 때 손목에서 떨어질 날이 없었던 단주는 소설가 박범신이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뒤 "수미산에서 너를 생각하고 사온 거여"라며 툭 던져준 염주다. 원고료로 받은 염주도 있다. 처음 입교하고 법명을 받으러 종법사님을 뵈었을 때도 염주를 선물로 받았다. 귀한 선물이라 몸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손목에 차기에는 동그라미가 너무 커서 가방에 달고 다녔다.

그 후로 몇 차례 종법사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종법사님은 접견 온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면서도 끊임없이 염주를 돌리셨다. 끊임없이 염주를 돌리는 모습이 내 눈에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단주를 팔찌로만 알아 장식으로 차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목에 차던 염주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원불교에 입교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지낸 천도재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천도재는 새벽 시간에 지냈다. 새벽에 천도재를 지내면서 나도 모르게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돌리게 되었다. 그 때 알았다. 염주의 알이 … 눈물이 굳어진 구슬이라는 것을. 그 후로 염주를 돌릴 때마다 눈물방울을 손끝으로 만진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가시가 장미를 지키듯이 슬픔은 인간을 지킨다. 오래 전에 내가 만든 문장이지만, 이것은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규정하는 문장이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사진가든 연출가든 상관없이 모든 작가들이 세계에 대해 가져야 하는 어떤 태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생각이다. 부처도 그렇다. 슬픔을 모르는 부처는 없다. 그러기에 부처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다. 부처는 슬픔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스스로 슬픔의 뿌리가 되었으면서도 슬픔에 대해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부처. 그런 부처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염주를 돌린다.

KTX를 탈 때마다 되도록 역방향 좌석에 앉는다. 역방향으로 앉아 염주를 돌리면서 멀어져 가는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손끝에서 돌아가는 염주에서 "세상은 온통 초록인데, 나는 붉은 눈으로 운다"(안도현) 라는 문장이 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삶이, 사랑이, 풍경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염주를 돌리면서 눈물방울을 만지는 것은 내 안의 슬픔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슬픔도 만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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