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원불교 교도랑 해라, 재일아" 하신 스승님(선산 박인도 교무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내던 중 이수묘 정토와 결혼을 했다. 정토는 일찍이 부모님의 인연으로 입교를 하고 정읍교당 청년교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결혼 후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가족 모두가 자연스럽게 일원가족이 되었다.

아들 종석은 대구 서성로 교당에서 목타원 최규원 교무님의 지도아래 간사 생활을 2년간 잘 마치고 현재 영산선학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큰딸 은도는 중학교 때까지는 교당에 나가다가 고등학교 입시준비를 핑계 삼아 교당 가는 것을 미루더니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아예 멀리 했다.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 딸을 불러놓고 미리 유언을 했다. "너희들이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더 중요하다. 세세생생 원불교를 떠나지 않도록 마음 챙겨야 하고 내가 생을 마친 후에도 교당에는 반드시 나가야 한다. 천도재는 꼭 원불교에서 지내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원불교 교도와 해야 한다." 지금은 은도가 한 달에 한번 이상 법회출석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막내 딸 은진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각종 훈련에 시간만 나면 참가했다. 훈련에 참가할 때마다 "세월이 지난 뒤에 교단에 보은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크게 빚을 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학생활 중에도 교당을 가까이 하려고 애쓰는 은진이가 고맙기만 하다.

결혼 초에 가족 인연들에게 불공을 소홀히 한 때가 많았다. 수년간 법회 출석을 무결석 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이번 주 일요일에 법회출석 안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온 가족이 여행 다녀오면 좋을 텐데요"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못 들은 척 했다.

산외교당 부지를 어렵게 매입하고 신축을 할 때도 정토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 출가 전에는 정토와 근무지가 서로 달랐지만 함께 퇴근할 때가 많았다. 집에 도착해서 곧바로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초공사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라며 시멘트 골조에 차량 불빛을 비추고 물을 충분히 뿌리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주위 소중한 인연이 신심을 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심 뚝 떨어지기 좋게 취사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불공을 놓치고 살았던 것이다.

어느 날 목타원 최규원 교무님이 불공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불공에 대한 말씀을 해 줬다. 그 후 마음을 챙겨 교무님에게 허락을 맡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가족 불공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정토도 속 깊은 마음공부로 거듭난 삶을 살고 있다.

정토와 자녀들과 대화를 할 때면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 누가 듣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라는 질문을 종종 던졌다. 제대로 된 수행을 해 나가려면 먼저 이 자리를 확연히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더욱 그랬다. "일원상 수행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고 했다. 가족에게 던진 질문에는 '법문을 온전히 받들어 그대로 믿고 따르되 일원상 자리를 제대로 해결해서 알고 일원상 수행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자녀들도 그 자리를 제대로 해결해서 알고 숨은 대법기로 커나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매 순간이 내 속 깊은 마음공부의 중심이다. 언제 어디서나 내 손길 닿는 곳 내 발길 머무는 그 곳이 교화의 장이고 그 곳이 나의 교당이다.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법인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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