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본래성품은 선악분별의 이전자리로 변함이 없다

청정한 성품을 본연 그대로 발현하는 것이 수행



佛言- 觀天地호대 念非常하며 觀萬物호대 念非常하며 觀世界호대 念非常하며 觀靈覺이 卽菩提하라. 執心如此하면 得道疾矣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천지를 볼 때에도 무상(無常)으로 생각하고 만물을 볼 때에도 무상으로 생각하고 세계를 볼 때에도 무상으로 생각하라. 그 중에 오직 영각(靈覺)의 성품이 무상하지 아니하여 여여 자연 하나니라. 이와 같은 관법(觀法)을 가진다면 곧 빨리 도를 얻으리라."

〈사십이장경〉 19장의 법문은 천지와 만물, 세계를 볼 때 이것들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주불멸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참 성품뿐임을 안다면 도를 빨리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다.

비상(非常)이란 무상으로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영각이란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래 성품을 말한다. 보리(菩提)란 각(覺),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느끼고 있는 삼라만상은 모두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물거품 같고 번갯불 같아서 잠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영원할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화창한 5월, 원불교 총부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 붓꽃, 백당나무꽃, 불두화 등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지만, 이 꽃들이 10일 정도 지나면 모두 시들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뚝 솟은 산이며, 산맥를 가로지르는 큰 강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을 보면 산을 밀어서 들판을 만들고,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들기도 하는 것을 보면 산하 역시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 변하는 것들이다. 즉, 꽃은 그 변하는 시간이 짧은 반면 산하대지는 오랜 시간을 두고 변할 뿐 결국 영속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원불교의 중요 경문인 '일원상서원문'에는 진리의 양면을 유상(有常)과 무상(無常)으로 나누어 설명을 하고 있다. 유상은 불변하는 자리로서 불생불멸을 나타내고 있으며, 무상은 변하는 자리로서 인과보응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유상과 무상, 이 두 개념은 진리를 파악하는 두가지 측면일 뿐 진리가 원래 둘로 나누어 진 것은 아니다. 일원의 진리는 '한 두렷한 기틀(一圓相)'이지만 그 속성이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로 이 둘이 서로 바탕하여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인연화합에 의해서 잠시 나타나는 것일 뿐 상주불멸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만물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쳐 변화하여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무상임을 알게 되면 재색명리에 대한 집착을 놓게 되며 다른 것들에 대한 집착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금강경 가운데 사상(四相)이 완전히 떨어지면 곧 부처라고 말했다. 사상 중 아상(我相)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여 자기와 자기의 것만 좋다 하는 자존심이라고 했다. 이 아상을 없애는 길은 내가 제일 사랑하고 위하는 이 육신이나 재산이나 지위나 권세도 죽는 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모두가 정해진 내 것이 아니라는 무상의 이치를 알아야 될 것이라 가르쳤다. 즉,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무상함을 알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무상한 것과는 달리 영원불멸하는 영각을 깨쳐 깨달음을 얻으면 빨리 도를 얻게 된다고 하셨다. 이 본래 성품은 일체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며, 분별이전의 상태로 길이 영령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의 성품이 정한 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 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고 말했다. (〈대종경〉 성리품 2장)

성리품에서 마음으로 발현할 때 선과 악으로 나타난다고 했지만 우리의 본래 성품은 선악 분별 이전의 상태인 것이다. 또한, 천도법문(薦度法門)에서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이나, 그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라고 말했다.(〈대종경〉 천도품 5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운행되는 이치를 따라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만 그 본체만은 늘 변하지 않고 여여자연한 것이다.

정산종사도 "우리의 성품은 원래 청정하나, 경계를 따라 그 성품에서 순하게 발하면 선이 되고 거슬려 발하면 악이 되나니(하략)"고 말했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0장)

본래 청정한 성품을 깨친 뒤에 성품의 본연 그대로 발현되게 하려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아니니 집착하지 말 것이며, 우리 공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역력히 존재하는 우리의 참 성품을 발견하여 공들이는 공부가 필요하다. 성품에 바탕한 공부는 만상의 세계에서 어디에도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빨리 도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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