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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칼럼. 대학생교화, 그 가치를 보자
청년 칼럼. 대학생교화, 그 가치를 보자
  • 정법종 교도
  • 승인 2017.06.02
  • 호수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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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법종 교도/중흥교당
▲ 정법종 교도/중흥교당

 대학생연합회활동…가성비 논리 적용 말아야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투자, 원불교 미래 달려



'가성비'라는 말이 있다. 투자한 금액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이러한 뜻을 가진 가성비는 경기가 불황이거나 혹은 필요한 제품 가운데 선택해야 할 때 특히 따져보게 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가성비 논리가 교화에도 적용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많은 재가출가 교도들이 청소년교화 특히 대학생교화에 있어서 '가성비'가 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언가 투자되는 교화비는 많은 것 같은데 되돌아오는 입교수나 헌공금 등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즉 대학생교화는 전체 교화 수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으면서, 정작 교당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대학생을 입교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와 대비되는 것은 군교화라 생각한다. 투자비용 대비 입교수 효율성을 따지는 '가성비 논리'에는 군교화가 단연 으뜸이다. 군교화에 비교하자면 대학생 교화의 수치적인 결과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원불교대학생연합회 임원이었던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학생교우회 숫자와 각 교당 법회출석인원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수치적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에 비해 '가성비 논리'가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대학생 교화가 '가성비 논리'에서 낮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린이교화와 비교할 때에도 드러난다. 대학생교우회는 대개 소속교당이 있다. 지원 역시 소속교당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지원받는 대학생들은 교당이 아닌 동아리방에서 주로 활동을 한다. 그래서 소속교당의 교도 입장에서는 막상 교당에서는 대학생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 대학생 교화를 위해 투자한 것들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반면 어린이는 교당에서 뛰어놀거나 법회를 보기 때문에 교도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린이교화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화한 어린이들은 교당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가성비 논리'에서 대학생 교화는 체감상 낮다고 생각하기 쉽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생교화에 반드시 필요한 지원이 있더라도 눈치상 아무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재가단체들과는 다르게 대학생의 경우 재정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알게모르게 팽배해 있는 교화의 가성비 논리 때문에 선뜻 도와달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렇게 어렵게 젊음과 열정 하나로 버티는 대학생들에게 힘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열정페이 논란'이다. 내가 대학생연합회 활동을 하던 시절, 어느 교무님이 '임원들이 활동에 사용하는 예산이 혜택'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예산이 어떻게 혜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혜택이란 말을 사용한 순간 우리가 열정을 다해 노력하고 봉사했던 것들은 '당연한 의무'로 전락해버렸다. 열정페이는 원불교 대학생들에게도 존재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대학생교화는 '가성비 논리'에서 떨어지는가. 당연히 아니다. 현재 대학생교화가 보여주는 수치를 단순한 현상유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학생 활동을 통해 열정있는 교도, 공부하는 교도, 깨어있는 교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대학생교화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의 경우 그 활동기간이 짧고 경제자립도가 일반 재가교도들에 비해 부족하기에 활동력이나 열정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펼칠 기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 짧은 기간을 잘 활용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무형의 가치에 잘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원불교의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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