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석/ 창원 명곡고등학교

나의 첫 부임지는 경남 김해 무척산 아래 자리한 시골 중학교였다. 총 여섯 개 학급으로 전교생이라야 고작 2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중학교. 1980년도 중반 첫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한 칸 사택에 거주하며 신나는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그해 4월1일 이른 아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보니 반장 녀석이 교문 밖에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한다. 부리나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교문을 향해 달리는데 반장을 비롯한 일찍 등교한 녀석들이 웃으며 날 쳐다본다.

교실 쪽으로 돌아와 "야, 반장 아무도 없던데?" 그때 반장 녀석이 "선생님, 오늘 만우절이잖아요." '아차, 속았구나!' 나는 웃으며 다시 사택으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 정식 출근을 했다. 그리고 교실에 가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떠들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훈계를 쏟아냈다. 화를 내며 "반장, 교무실로 와!" 그리고 나를 따라온 반장을 향해 반장의 역할과 요즘 학생들의 학습 태도 따위를 들먹이며 일장 훈계를 하고 반 학생들 모두 운동장에 무릎 꿇고 앉아있게 했다.

교무실로 돌아와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김 선생, 왜 학생들을 꿇어앉혀 놨지?" 난 시치미를 떼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다시 교장 선생님은 반장을 불러 추궁을 했다. "반장, 선생님은 시킨 적이 없다는데?" 반장이 내 눈치를 보며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양쪽 검지를 볼에 대고 혀를 쏙 내밀었다. 그 때 반장 녀석이 눈치를 채고 "아, 만우절!" 사태를 파악한 교장 선생님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교장실로 향했다. 통쾌했다. 난 혼자 당했지만 녀석들은 떼거리로 당했다.

그런데 3년 전 여고에서 근무할 때였다. 여고에 부임해서 내게는 두 개의 별명이 붙었다. '천사 선생님'과 '불이야 선생님'이다.

오랜 기간 학생부장(인성부장)이란 보직을 맡은 관계로 '학교폭력'이란 단어를 지겹도록 들어야만 했다. 이 단어에 식상할 대로 식상한 나는 일체 이 단어를 쓰지 않기로 다짐하고 학교폭력이란 단어를 뺀 '우리는 천사들이잖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학생들의 쉼터를 만들어도 '천사들의 작은 쉼터', 모범상 이름도 '창원명지천사상', 학생들을 부를 때도 '천사야' 그러다 보니 내게는 '천사 선생님'이란 별명이 붙었고 당연히 학교폭력 사안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이야 선생님'이란 별명은 수업 시간에 내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3년 전, 4월1일 5교시 3학년 6반 교실에 들어갔다. 점심시간 이후라 식곤증에 시달린다는 것쯤은 이해한다. 그래도 이 녀석들은 고3이 아닌가. 깨우다 지쳐 나는 나의 필살기를 동원했다. "불이야"라고 목청을 높이는 순간, 놀랐다. 흔히들 이를 두고 '간 떨어진다'라고 하던가? 엎드려 있던 녀석들이 동시에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치며 "불이야!"를 외치며 복도로 몰려나가 버렸다.

옆 반에서 수업을 하다 뛰쳐나오는 선생님, 창문을 열고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학생들. '아, 만우절이었구나!' 3학년 교실이 4층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날 3학년 전체 5교시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올해 만우절은 토요 휴무일이어서 아무런 일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조금 서운하다는 느낌은 왜일까? 지난 3월25일 영광국제마음훈련에서 원기102년 교도정기훈련에 참가하고 마칠 때쯤 감상담 발표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때 내가 뱉었던 말이 떠오른다.

"앞으로 저의 몸에서 아니 제 삶에서 일원의 향기가 풍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마다 4월1일을 기다리며 나는 어떤 향을 준비할지 지금도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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