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법회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연주에 맞춰 성가 연습이 한창이다. 그러나 교당에 나와 있는 모든 교도들이 성가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교도들은 주변 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안부를 묻는 등의 잡담에 빠져 있다. 마침내 죽비가 울리고 "입정에 들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신호에 따라 교도들은 일제히 합죽이가 된다.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선정에 드는 시간은 겨우 1분 내외다. 이처럼 입정은 매우 의례적이고 습관적인 순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순서를 마련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색은 어디에서 오는가? 색에 알맞은 성리학적인 표현은 기(氣)다. 공은 이(理)로 대체할 수 있다. 율곡 이이가 '기즉시이 이즉시기'의 이기일원론은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금강산에서 반야심경을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중국과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철학적 사유를 전개해왔고 그것은 논증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중국의 학자들은 기가 무(無)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여기에 대해 화담 서경덕은 무에서는 그 어떤 것도 발현될 수 없으니, 기는 허(虛)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무는 '없다'는 뜻이고, 허는 '비었다'라는 뜻이다. 중국 성리학과 조선의 성리학이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경덕은 기가 무에서 나오지 않고 허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 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를 선천(先天)이라고 하니 그것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쥐면 비어 있고 잡으면 없으며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이 태허에는 곧 단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이다.' '태허가 움직여 양을 낳고 조용히 하여 음을 낳는다. 기가 모여 두텁게 쌓인 것이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서경덕이 남긴 말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 가서 검색해보면 서경덕의 말을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검색이 아니라 사유다.

태허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태허가 움직여 혼돈(카오스)이 된다. 이 혼돈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색이 창조되고 변형되며 다시 재생산된다. 마침내 우주가 생성되는 것이다. 우주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에서부터 저 먼 은하까지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겨자씨 하나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태허는 다른 말로 허공법계이다. '나'라는 인간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물질과 정신은 허공법계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허의 본성은 고요에 있다. 이 고요로부터 자성과 색이 생성되는 것이다. 즉, 고요는 만물의 자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정'을 고요로 들어가 새로운 무엇들을 생성해내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라'는 뜻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겠다. 일요일 오전, 한 번의 법회를 보는 것도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우주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에 머물게 하는 것은 곧 허공법계의 고요에 머물기 위한 어떤 여행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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