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혁제 / 정치평론가
허광영 총장 강의는 열정적, 동서양 철학 넘나들어

정전공부하는 동안 내 마음의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바로 '정전 공부'다. 은덕문화원에서 개설한 소태산아카데미에 얼떨결에 참여하게 됐다. 40여 년 전 팍팍한 군 생활 때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삶을 이끌어주신 이선종 원로교무의 권유로 시작한 '정전 공부'는 어려웠다.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의 환희심 가득한 신앙이 정말 부러웠고, 가객 예찬건 선생이 이끌어주는 노래 공부는 즐거운 덤이었다.

두 시간 남짓 펼쳐지는 진리의 향연은 매우 소중한 기억이었다. 복잡한 세상 일 내려놓고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인 허광영 교무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교리가, 진리가 명쾌하게 귓가에 꽂혔다. 물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듣고 또 들어도 늘 처음 듣는 이야기 같고 어려웠지만. 하기는 돈오(頓悟)의 능력이 없을진대 강의 몇 번 듣고 '바로 이거다!'라며 깨닫기를 바라는 건 터무니없는 욕심일 것이다.

허 총장의 강의는 열정적이다.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을 넘나들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거침없이 꿰어간다. 그러나 강의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적절하게 툭 던지는 허 총장의 우스개 섞인 비유는 딱딱한 분위기를 무장해제시킨다. 게다가 다른 교무들과 교도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때로는 격렬하게 벌어지는 토론도 정전 공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자신도 없고 아는 것도 부족해 토론에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이다.

"진리를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며 허 총장은 진리공부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허 총장의 강의의 요체를 "사람답게 살려면 마음 공부 열심히 해라. 신앙도 수행도 열심히 해라. 진리는 머리로 깨우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라고 정리한다면 이게 맞는 걸까. 잘못 알아들은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랴. 그 동안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됐지.

물론 진리는 말이나 글만으로는 깨닫지도 드러낼 수도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뒤에 공부를 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래야 진리에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정전 공부부터 하였으니 진리에 거꾸로 접근한 셈이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도대체 진리가 뭐냐'는 아주 어려운 화두는 내 머리 속에 강한 자취를 남겼다.

대종사의 가르침을, 일원상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일원상의 진리 안에 있고, 내 안에 일원상의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어설픈 공부였지만 정전 공부는 '산의 바위틈에 솟아나는 맑은 샘'과도 같았다. 바쁘게 살아가면서 느끼는 갈증을 풀어주고, 그만큼 내 삶도 더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전 공부를 하면서 '진리'를 향한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느리게 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만도 어딘가.

내 첫 번째 정전 공부는 시루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다 빠져버리지만 콩나물은 잘 자란다. 그러나 물을 안 준 시루에서는 콩나물이 자라지 못한다. 콩나물시루에 준 물처럼 내 몸과 마음에서 흘러나갔지만 대종사의 가르침이, 허 총장의 강의가, 일원상의 진리가 내 맘,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 내 삶이 진리 쪽으로 제대로 방향은 잡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정전 공부를 하는 지난 몇 달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깊은 숲속에서도 왠지 두렵지 않았다. 허 총장이라는 좋은 안내자가 있고,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부였기 때문이리라.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은덕문화원으로 오가는 길은 행복했다.

진리의 문(gate)을 열어준 소태산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 마음의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올 가을 다시 소태산 아카데미가 개설된다고 하는데 그 때 또 다시 참여해 진리의 길(path)을 찾을 수 있도록 정전공부를 계속할까 말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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