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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타원 스승을 추모하며
향타원 스승을 추모하며
  • 장덕훈 교무
  • 승인 2017.06.16
  • 호수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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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훈 교무/광주전남교구장
"배내에 와서 좀 살아" 그 한마디에 14년간 모셔

스승의 기도 "내가 힘이 없어 힘 달라고 기도한다"



마흔 살 무렵, 향타원 박은국 종사를 뵌 적이 있었다. 그날 나에게 "배내에 와서 좀 살아" 하는 그 말에 14년을 배내청소년훈련원에서 살았다. 1년쯤 지났을 무렵 스승은 나에게 "원장이 가려면 미리 말해" 그러기에 "스승님이 불러준 은혜를 다 받들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려도 힘들어서 가겠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니, 두 번 다시 그 말을 하지 않고 일체를 나에게 맡겼다. 나 역시도 스승의 말씀에 "아니요"라고 한 적 없고, 혹 말씀이 이해가 안 될 때면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대체로 이해가 됐다.

스승은 늘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공중의 몸이기 때문에 몸에 불공을 잘 못하는 것도 공중에 큰 빚을 지는 것이다" 하고 열심히 요가도 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겼다. 그런데 제자들의 시봉도 마다하고 갑작스럽게 열반에 드니 마음에 못내 아쉽다.

스승은 열반하기 전, 시봉하는 제자에게 "참 고맙다.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크다"라는 말로 제자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날 주무시다가 4시10분경에 '내가 좀 아프다' 하더니 몸에 땀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성연 배내훈련원장이 119 구급차를 불렀는데 정좌한 채,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고 해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얼마쯤 후에 "나 좀 누워야겠다" 하고 그대로 6월6일 6시경 열반에 들었다.

스승은 선대 종법사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17세에 영산에서 대종사를 친견한 이야기, 정산종사, 주산종사, 대산종사를 모셨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였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절절하면 그러실까 생각했다. 아마도 향타원님은 4분 스승을 마음에서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배내에 조실을 짓고 네 분 스승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서 사은(四恩)정사로 이름 지었다.

자연을 사랑한 스승은 배내훈련원에는 절대 제초제를 못 뿌리게 했다. 한번은 며칠간 지방 순교를 간다 하여 몰래 제초제를 뿌렸다. 그런데 다음날 돌아와서 노랗게 변한 풀들을 보며 "누가 이랬냐?" 하고 호통치니 당시 김순익 교무가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나 돌아온 벌이 '일주일간 좌선을 나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던 교무들이 자기가 그 벌을 받겠다고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나중에 김 교무가 "왜 좌선 나오지 말라는 벌을 내렸습니까?" 하고 여쭈니 "성불의 길을 가는 수도인에게 좌선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 큰 벌이 어딨냐?"고 스승은 말했다.

스승은 후진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가 있었다. 교무들이 간사들에게 이 일 저 일 심부름을 순서없이 시키면 "무슨 일이든지 딱 맡겨야 역량이 터진다"고 그 지도법을 알려주었다. 또한 배내에서 사는 사람들이 적공하는 모습을 보여야 방문한 사람들도 공부심을 낸다며 수행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공금에 있어서도 철저해 시봉금이 들어오면 한 번도 당신의 사익으로 쓰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봉금만 모았다가 생필품을 사거나 꼭 챙겨야 할 후진들을 챙겼다.

스승은 무슨 일이든지 철저히 준비해서 완벽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배내에 세운 건물들을 보면 어느 곳 하나 즉흥적으로 지은 건물이 없다. 대각전은 10년 기도로 이룬 곳이고, 일원탑은 17년간 기도하며 올린 탑이다. 일원탑 불사를 위한 기도문에는 '천일이 지나고 또 천일이 지나고 다시 천일이 지나더라도"라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배내의 모든 건물은 스승의 머릿속에 다 그려져 있었고, 그 계획된 바로 짓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 정성을 들였다. 심지어 나무 한 그루까지도 다 계획된 바가 있었다.

스승은 제자들이 왜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내가 힘이 없으니, 힘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래서 배내에는 목탁소리가 끊기지 않게 하라고 늘 당부했다. 스승님은 기력이 쇠하기 전까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기도터에 올라가 기도를 올렸다.

자연을 참 좋아했던 스승은 88세에 제자들과 함께 몽골에 가서 드넓은 초원에서 기도도 하고 먼 훗날 훈련원을 이곳에 지었으면 좋겠다며 덩실덩실 춤도 췄다. 그렇게 14년을 스승을 모시고 사는 행운을 누렸는데, 그곳을 떠난 후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7일 향적당에서 올린 추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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