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주면서도 욱하는 알 수 없는 마음

남편이 퇴근 할 때를 맞춰 저녁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온다. 잘 다녀왔느냐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말하고 TV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TV에서 '내몸사용설명서'라는 프로를 하고 있어서 같이 먹으면서 봤다. 어떤 식품 이야기를 하는데 몸에 엄청 좋고 필요한 식품이라 꼭 챙겨서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앗 경계다. 나는 남편이 저 광고를 보고 마음이 솔깃해져서 또 살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저런 거 다 선전이다, 괜히 많이 팔려고 과대광고 하는 거다" 하면서 미리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는 "지난번에 브라질리언 넛트도 사놓고 맛없어서 안 먹었잖아"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 말이 "안 주니까 안 먹었지, 밥 먹을 때마다 반찬 위에 잘게 썰어서 먹기 좋도록 줘 봐라 안 먹나" 하면서 나를 원망하는 것 같이 말하는데 순간 짜증이 확 난다. 경계다.

더 이상 내가 뭘 더 챙겨줘야 하나. '나한테 요구하는 게 뭐가 그리도 많나' 하는 생각에 언성을 높여서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잘라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자르냐고 자기 손으로 한번이라도 잘라는 보고 하는 등 억하심정으로 톤을 더 높여서 말을 하니 남편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기분이 엄청 언짢았는데 남편이 더 이상 말을 안 하니 나도 말을 멈추고 이 상황이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도 잘하려고 엄청 신경 쓰고 애쓰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마음도 모르고 저런 잔소리나 하나 싶으니 욱하는 마음에 나도 순간 경계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어서 그 순간이 경계임을 알았어도 너무 억울한 마음에 똑같이 언성 높이고 화를 버럭 냈으니 나도 문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남편에게 뭔가 내가 자기를 위해서 챙겨주는 성의가 부족하다는 투의 말을 듣는 경계 따라 나도 모르게 섭섭하고 원망스러워 화가 욱하며 있어지나니 그 섭섭하고 원망스러워 욱하고 화내는 마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경계 따라 마음을 대조해 보고는 있지만 순간순간 있어지는 섭섭하고 원망스럽고 욱하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때가 많다.

문답감정: 도반님, 뭔가 몸에 좋다하면 솔깃해져서 사는 남편을 잘 알고 있기에 또 사면 어쩌지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지니 모두 선전이라며 일침을 가하는 마음이 알뜰하고 단호하고 시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브라질리언 넛트를 통해 형상 없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마음에 공들이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미 도반님은 큰 공부 큰 뜻을 착수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그 공적영지의 자리를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겁니다.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리는 자리. 사이좋게 TV를 보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는 자리. 원망과 섭섭함과 욱하는 화가 일어나는 이 자리를 그때 그때 확인하는 순발력이 바로 마음의 힘입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섭섭한 마음이 있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그 당연한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오직 한 분. 이 경계에서 공부하는 도반뿐입니다.

대산종사의 부부의 도에 보면 서로 오래갈수록 공경심을 놓지 말며, 서로 가까운 두 사이부터 신용을 잃지 말 것이요, 서로 근검하여 자력을 세워 놓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공경심도 신용도 자력도 내 마음을 떠나서는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한마음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원상의 진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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